산행/한북정맥

한북정맥 종주 1구간

하눌이 2009. 1. 8. 16:26

제 2차 한북정맥 1구간

산행명

제 2차 한북정맥 1구간

산행지

우이암 ~ 울대고개

소재지

경기양주군,의정부시,서울시

지도

1/25,000 의정부, 고양

산행일시

시작 : 2002 년 09 월 08 일 ~ 종료 : 2002 년 09 월 08 일

신청 마감일

마감 : 2002 년 09 월 07 일

산행기간

당일산행

산행장르

워킹산행

집결지

한일상회(6번 버스 종점)

회비

정회원 10,000원, 회원 1,2,3,손님 15,000원

이동수단

대중교통

산행리더

주양돈(하눌)

산행서브

우태열(바람소리)

산행일정



09:00 - 출석 인원점검 및 회비수령
09:30 - 우이암(542m) 도착
10:30 - 도봉산(716.7m) 정상
11:30 - 505m봉
12:00 - 사패산(552m) 정상
13:30 - 산제 및 도시락
15:00 - 울대고개 도착
16:00 - 뒷풀이 및 해산
※ 계획작성 - 우태열(바람소리)

★ 위의 산행계획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변경되어질 수 있습니다.

준비물및 기타

★ 개인 준비물

방수방풍의, 수통, 수저, 보온물통, 씨에라컵, 보온도시락(도시락), 따뜻한 여벌옷, 헤드램프(여벌건전지 확인), 개인 행동식(건과류, 육포, 비스킷, 연양갱, 치즈, 차, 미숫가루 등), 지형도, 나침반

참석 인원

총 : 40명

정회원 : 18명

강희순(hisooni7), 구정회(FogLake), 박명철(헌터), 박상준(박상준), 박성수(올빼미), 박종학(novell57), 반재화(hanabijh), 신종균(파주마루), 우태열(바람소리), 유경자(풍경), 이동기(profaki), 이영아(하늘산), 정구현(백두주막), 정만섭(baros), 정재무(범이랑), 정희식(천연색), 조한규(hanquy), 주양돈(하눌)

일반회원 : 18명

김남호(나머), 김미정(jung315), 김숙자(강희순+1), 김창용(bpkim21), 남기정(시나브로), 안흥욱(okhoward), 염희옥(마운틴), 우대현(pulisul), 이수동(lsd3413), 이왕선(야호고고), 이정숙(sugi8014), 이정숙+1, 이지수(산소녀), 이혜진(carol), 정유엽(jyy0422), 최시화(chsw), 최혜정(scorpio), 표철희(pyochelhee)

기타 : 4명

현지합류 정회원 : 신인승(tnautes), 인치성(청계산)
지방회원 : 김경림(greyeyes)
미성년자 : 정우영(정구현+1)

산행 후기


가. 서문 (한북정맥 그 첫걸음을 내딛으며…)
드디어, 새로운 역사의 첫 장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굳이 '새로운 역사' 까지나 들먹이며 거창하게 표현할 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가슴 한 구석에 무엇인가 새로이 시작한다는데 대한,
그리고, 그다지 쉽게 접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닌 만큼, 각자에게,
  한구간 한구간 함께하는 모든 님들에게 스스로의 마음속에 하나의 역사를
쌓는다는 것은 분명 사실일 것이기에 거창하게 표현해봤습니다.
비록, 나중엔 콩가루가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기왕 하는거, 하는데까지 해봐야지요.   나름대로, 어떠한 방법으로 기록을 남길것인가에 대해 몇가지
고민을 해 보았는데, 그다지 신통한 방법이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기록으로 남기고 후일, 누군가에 의해 새로이 정맥종주에 도전할 어떤 님들에게
나름대로 참고서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기록이기를 바래보며, 몇가지 형식과
나름대로의 기준을 정하여 기록에 남기려 합니다.
우선, 전체적인 운행기록을 시간순으로 정리하고, 주의를 요하는 부분이나,
특이사항을 간략하게 메모하여 전체적인 운행경로를 정리하였습니다.
그 다음, 후기 및 탐사기록에서는 글을 작성하는 이(바로, 나)의 생각이나
느낌을 많이 반영하고, 특히 주의를 요하여야 하는 부분에 대한 기록과 지나가는
길목에 얽힌 여러가지 이야기들, 에피소드 등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시간순으로
기행수필형식으로 써 나가려고 합니다. 필요한 경우, 소제목을 달기도 하였습니다.
  마지막에는, 이번 산행에서 발견된 문제점이나, 앞으로 개선되어야 할 점,
글을 쓰면서 참고한 문헌등을 기록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구간의 기록은 그 첫 기록인 만큼, 한북정맥 전체에 대한 개요와
탐사제외구역에 대한 설명을 후기의 서두에 붙일까 합니다. 덕분에 글이 다소 길어지겠지만...

당부의 말씀!.
간간이 잘못된 내용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알립니다.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틈틈이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여 하나하나 공부해
나가는 과정에서 적는 글이다 보니, 다소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그 내용으로 인한 어떠한 책임을 지거나 변명할 의사는 없음을 미리 밝힘니다.
혹, 이 글을 참고하여 논문을 쓴다거나, 출판물을 발행한다거나....
기타 어떠한 사항에 대해서도, 이 글을 참고하는 당사자의 책임이며,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거나 불확실한 내용이 포함될 수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잘못된 내용이나, 의문점을 발견하시면, E-mail: stimulus@hitel.net 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보내주시면, 최대한 검토하여, 별도의 오류표기를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더불어, 글 쓰는 이의 편의를 위해, 아래 기록에서 부터는 존대를 쓰지 않고,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말끝을 짧게 맺었으니,
행여 읽으심에 불쾌함이 없기를 바랍니다.

나. 운행기록
09시 20분 - 한일슈퍼 앞 출발
09시 30분 - 우이암 매표소 통과
10시 20분 - 원통사 (중간출석)
10시 40분 - 원통사 출발
※ 원통사와 바로 옆 보문산장에 식수와 화장실 있음.
이곳으로 어프로치를 한다면, 여기서 마지막으로 식수를 보충하고,
자잘한 볼일을 모두 해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됨.
11시 00분 - 우이암(542m, 종주시작 지점)
11시 20분 - 헬기장
11시 30분 - 오봉능선 안부에서 오봉으로 오르는 갈림길
11시 55분 - 도봉주능선과 오봉능선및 거북골 교차지점 (칼바위 아래)
12시 45분 - 자운봉 (739.5m, 우회등산로 이용)
13시 00분 - 도봉산 (716.7m 봉)
13시 20분 - 야영조 합류, 점심
14시 10분 - 출발
14시 45분 - 망월사 갈림길
14시 55분 - 649m 봉
15시 20분 - 회룡골 갈림길
15시 40분 - 범골 갈림길
16시 10분 - 사패산 정상 (552m)
16시 20분 - 산제
17시 00분 - 하산시작
※ 하산길이 여러갈래이므로, 울대고개로 내려서는 능선길을 확인하지 않으면,
길을 잘 못 들 수도 있음. 표지목은 없으나 조금만 주의를 하여 살펴보면 쉽게 확인됨.
18시 10분 - 울대고개 (산행종료)
이후 19시 10분까지 간단한 뒷풀이
한북정맥 1구간 진행로 - 붉은색 굵은 선

다. 후기 및 탐사기록

미리 살펴보아야 할 몇가지 문제들...

    역종주에 부여하는 나름의 의미
많은 한북정맥 종주 팀들이 휴전선 아래 수피령에서 시작하여,
우이암쪽으로 진행하는것과는 달리 이번에 우리는 우이암에서 수피령쪽으로 진행
하기로 하였다. 특별히 그렇게 하기로 한 구체적인 이유는 없지만, 역종주에
대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실, 특별한 이유를 가지고 '역종주를 하자' 한건 아니지만,
두세가지의 의미부여를 할 수 있을 듯 싶다.

우리 조상님들의 땅에 대한 인식은 정말 놀라우리만치 날카로왔던 것 같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산줄기와 물줄기의 흐름을 비교하는
설명에서, 여러 골짜기에서 발원된 물들이 바다와 가까워 질수록 하나의 줄기로
모이듯이, 여러 평야, 혹은 물가에서 시작된 산줄기는 결국 백두대간이라는
하나의 큰 줄기를 만나면서 하나로 모아진다. 라고 설명하였다.
즉, 어디에서 시작하건, 좀 더 높은곳(혹은, 큰 줄기)을 찾아 찾아 오르다 보면,
결국은 백두대간이라는 큰 줄기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흔히들 강을 탐사하는
여행을 할 때 그 발원지격이라 할 수 있는 심산계곡에서 시작하여 강의 흐름을
따라 이동하면서 탐사하듯, 이번 역종주 또한, 흐름의 맥에서 볼 때 가장, 눈에
띄지 않고 하찮아 보일 수 있지만 한북정맥을 한북정맥이게 하는 마지막
위치에서 그 줄기를 따라 올라간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어느 가지로 나가야 할지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줄기,
중심이 되는 줄기에 합쳐지며 이동하는 것이다.

두번째로 의미를 부여하자면,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팀들의 대부분이 남쪽끝에서
시작하여 휴전선 아래에서 북녘땅을 바라보며, 언제고 통일이 되면 나머지
구간을 마져 마치리라 다짐하듯, 한북정맥 또한 남.북에 걸쳐 존재하는 만큼,
수피령 이후의 구간을 마칠수가 없는 현실이다.
반쪽짜리 여행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하나의 완전한 여행으로 자리매김할
빌미를 마지막에 남겨둔다는 건 처음부터 반쪽에서 시작하는것과는 또다른
의미가 되리라 본다.

<한북정맥과 휴전선, 검은 선이 휴전선>

· 한북정맥(韓北正脈)의 시작과 끝, 그리고 탐사구간
과연, 한북정맥은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 것일까? 물론, 이번에
한북정맥 종주팀이 탐사하는 구간이 한북정맥의 모든 구간은 아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한북정맥의 시작과 끝은 어디일까?

산경표에 의하면, 한북정맥은 백두대간의 49번째 표기지점인
분수령(分水嶺, 현 지명은 추가령)에서 서남쪽 백빙산
(백암산, 혹은 천산이라고도 함)으로 갈라져 나와 김화의 오신산, 불정산,
도봉산, 삼각산(현재 북한산)을 지난 후 고양의 노고산을 거쳐 교하의
장명산에 이르기까지 총 21개의 산(봉 포함)과 2개의 령(고개)으로 표기되어
있다.

분수령의 대략적인 위치는 강원도와 함경남도의 경계선중 가장 남쪽지점으로서,
민요에도 등장하는 마을이자 경원선 철도의 역 이름인 '신고산'에서 약간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다. 물론, 이곳은 현재로서는 갈 수 없는 곳이다.
DMZ라는 특이한 이름과, 분단이라는 현실 아래 철원~김화 북쪽 구간의 탐사는
언제가 될 지 모를 다음으로 미루어야 한다. 아무래도 탐사가 가능한 구간은
다른 여러 팀들이 그러했듯이 수피령(水皮嶺, 수피령은 산경표에 표기된
지명은 아니며, 한북정맥 산줄기에 포함되어 있는 고개 이름이다.)까지가
될 것이다.

이제, 우리가 출발지점으로 선택한 우이암(牛耳岩)과 그 이전부분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첫 출발을 도봉산 우이암에서 시작하였지만,
이 곳이 한북정맥의 마지막 지점은 아니다. 그 줄기는 남쪽으로 삼각산(三角山,
현 북한산)을 거쳐 서쪽으로 고양의 노고산과 견달산을 지나 교하의 장명산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이곳에서 임진강과 한강이 만남으로써, 그 산줄기의 마지막을
알리고 있다. 물론, 정맥종주의 취지와 의미를 최대한 살려 탐사를 하고자
한다면, 이곳 장명산에서부터 시작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에서
인지 이곳은 탐사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가장 큰 이유 두 가지를 들자면, 우이령 일대와 그 이후의 정맥구간이 군사지역
으로서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것과, 수많은 국토의 난개발로 인해 산줄기의
파악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일대는 고도 일 이백미
터가 채 안되는 곳이 주를 이루며, 그나마도, 파헤쳐지고, 도로가 나고 하여
산줄기인지 아닌지 판단하기가 상당히 난해한 모양이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사항은 아니지만, 여러방법을 동원한 자료조사에서 그렇게 판단되었음).

아래에 실제로2001년 여름에 그 구간의 탐사를 한 신경수님의 기록중 일부를
옮겨본다.
"우리 산하가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파헤쳐지고 짓뭉개져 자연의 본 모습을
지니지 못하고 능선 형상만을 유추할 수 있는 정도로 남아 있는 한북정맥 마지막
구간이다. 어느 자료에서 장명산은 채석장으로 되어 없어졌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실제로 가 본 장명산은 없어진 것이 아니고 공릉천변에서 바라보았을 경우에는
그 본 모습을 지니고 있었으나 공릉천변을 돌아 목장으로 오르는 길은 폐자재
차량들이 쉴 사이 없이 드나들고 산 정상부까지 각종 쓰레기로 산을 이루고
있었다. 건축폐기물처리장 교하환경이라는 회사가 자리잡고 산을 파헤치고 각종
건축물 쓰레기를 처리하고 있었다 머지 않아 또 하나의 난지도가 형성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해 심한 가슴앓이가 도지는 듯 가슴이 뛰고 눈앞이 어른거린다.
종주 시간보다 아르바이트 시간이 더 긴 이 구간의 능선을 찾는다는 것은 상당한
주의를 요한다. 그래서 실패담 겸 사실대로 적어본다............ 후략"

우리 조상님들은 산의 개념을 높이 솟아 있어야만 산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줄기자체가 물을 가름으로써 (山自分水嶺), 지역과 지역을 형성하고, 주민과
주민의 집단을 나누는 역할을 하는데 중점을 두었던 것 같다. 결국, '산'이라는
특정지역을 명시하는 것 보다는, 삶 자체가 땅이고, 땅은 곧 산이며, 물길이기도
하며, 삶 자체를 산과 땅, 그리고 물의 한 부분이자 모든 자연의 이치와 삼라만
상의 한 부분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글쓰는 이의 생각이며, 근거자료나 증빙자료는 없으므로 충분히
잘못된 생각일수도 있음.)

산경표에 표기된 한북정맥의 각지명을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백두대간의
분수령에서 시작하여 백빙산(천산), 쌍령산, 전천산, 수우산, 여파산,
오신산(오갑산), 충현산, 불정산(부정산), 대성산, 백운산, 망국산, 운악산,
주엽산, 축석현(축석령), 불곡산(부곡산), 홍복산, 도봉, 삼각산(북한산, 화산),
노고산, 여현(여산), 견달산, 고봉산, 장명산 이다.

<산경표의 일부, 출처 - '안강'님의 백두대간 홈페이지 http://www.angangi.com>

그 중에서 우리가 종착지점으로 잡고 있는 수피령은 대성산의 남서쪽에 위치한
고개로서 강원도 철원군과 화천군의 경계선과 56번국도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그리고, 출발점으로 삼은 우이암은 도봉에서 삼각산(북한산), 노고산으로
이어지는 우이령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잡은 도봉산 자락의 한 봉우리이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점을 마져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그 의문점이란 바로…

· 삼각산(三角山, 현 북한산)은 과연 한북정맥의 줄기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 짚어 볼 필요성이 있다. 분명, 몇차례에 걸쳐 편찬된 산경표
에는 삼각산(북한산)을 한북정맥의 한 줄기로서 도봉과 노고산 사이에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직접 산줄기를 이어보고 마룻금을 그어보면 알겠지만, 분명 산줄기
의 흐름은 도봉주능선을 따라 우이암으로 내려오다 우이암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급격하게 바꾸어 우이령으로 향하며, 우이령을 넘어서자 마자 노고산 ~ 상장봉 ~
북한산을 잇는 능선줄기의 상장봉과 북한산의 중간지점(육모정고개 북쪽 지점)으로
이어진다. 이 지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듯 하다.



<우이령 ~ 삼각산(북한산) ~ 상장봉으로 갈라지는 곳의 마룻금>

여기서 북한산을 향하자면, 그 산줄기는 남쪽으로 북한산 일대의 여러 봉우리를
거치면서 창릉천 우측으로 진행하여 창릉천이 한강으로 흘러드는 지점에서 산줄기,
즉 땅으로서의 생명을 끝내고 있다. 우리 조상님들의 산줄기의 개념으로 살펴볼 때,
이것은 분명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 우이령을 넘어 북한산일대의 북쪽능선에 도달한
산줄기는 그 곳에서 북서쪽으로 방향을 꺾어 상장봉을 넘어 서쪽 노고산을 지나
남서쪽으로 향하여야 임진강과 한강이 어우러지는 장명산 쪽으로 향할 수 있으며,
산경표에서도 그렇게 기록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봉과 노고산 사이에 왜 방향을
바꾸는 하나의 가지에 불과한 삼각산을 표기하였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 전문가도 아니며, 많은 자료를 찾아보지도 못했으며, 이제 겨우
산줄기의 개념을 잡아나가고자 일상 틈틈이 자료를 구하고, 느리게 느리게 거북이
걸음으로 공부해 나가고 있는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생각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굳이 이렇게까지 밝히는 이유는 이 글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참고만 하라는
뜻이며, 어떠한 자료적 근거나 뒷받침할만한 내용도 없으며, 그 말은 이 글을 믿고
논문을 썼다거나, 인용했다거나, 출판물을 발행했다거나 기타등등… 어떠한
경우에도 내용의 잘못으로 피해를 보더라도 책임을 지거나 변명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더 이상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쓰여질 '한북정맥 종주
탐사기'의 다음구간, 다음구간은 물론, 마지막회까지… 나름대로 최대한 자료수집
을 하고, 분석하여 쓰기는 하겠지만, 서두에서 밝혔듯이 얼마든지 내용의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이다.

삼각산(북한산)은 일찍이 조선의 수도 한양의 북쪽에 위치한 장엄한 산으로서
도봉산과 더불어 정치적, 군사적으로 그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였으며, 단순히,
정치적, 군사적 역할뿐만 아니라 화강암으로 구성된 수많은 바위와 그 계곡계곡을
누비는 지천들은 한강으로 흘러들며 백성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그 산새가 수려하여 수많은 승려들과 문인들이 찾아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만큼 경관또한 뛰어나며 소의 뿔에 비유되는 삼각산은 당시 주류사상의 한
부분인 풍수지리적으로도 절묘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연구간사 이상협 님이 집필한 '서울의 고개'라는 책을 보면
영, 정조 때의 문신 이계 홍양호가 남긴 글을 소개하고 있다.
"대저 뿔은 성질이 강(强)하고, 귀는 성질이 유(柔)하니 강한 자는 꺾여지고 유한
자는 오래 간다고 해서가 아닌가? 뿔은 형상이 위가 날카롭고 귀는 형상이 아래로
드리우니 위로 간 자는 버티고 아래로 간 자는 순함으로 해서가 아닌가?
뿔은 직책이 찌르는 것이요, 귀는 직책이 듣는 것이니 찌르는 것은 힘으로 하고
듣는 것은 지혜로 함으로 해서는 아닌가? … 동해(東海) 위에 산이 있는데
「삼각(三角)」이라 하고 삼각산(三角山) 아래에 동(洞)이 있으니
「우이(牛耳)」라고 한다. 산을 각(角)이라 하고 동을 이(耳)라 하니, 뿔이 있는
자는 귀가 없을 수 없을 것이다. 산이 위에 있고 동이 아래에 있으니, 뿔은 위에
있고 귀는 아래에 있는 것이다. 산은 높이 솟아 오르니 뿔 같은 위엄이요 동은
비어서 수장(收藏)하니 저 같이 받아들인 위엄으로 먼 곳을 항복시키고 받아 들여서
물건을 용납하니 군자의 기상이 아닌가?.... 후략"

일제시대때 일본인들이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그 기운이 흐르는 중요한 곳곳에
쇠말뚝을 밖아 기운을 차단하려 하였다는 사실과, 이 곳 북한산 일대에 밖힌 쇠말뚝의
수가 엄청나다는 것만 보아도 그 상징성이 어마어마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여러방면으로 그 의미가 남달랐던 삼각산을 민족의 혈이라 할 수 있는 대간,
정맥 체계인 산경표에서 제외시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뒷골이 땡길 일이었던 것이
아닐까!. 어쩌면, 전통적으로 순수하게 지리체계만을 연구하여 편찬한 이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지만 권력의 힘이 작용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어찌하였건,
북한산은 당시 한양중심의 조선에 있어서는 너무나도 중요한 지리적, 사상적
요충지였고, 그 이름은 삼각산이라는 이름으로 산경표에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또 하나 분명한 것은, 북한산으로 산줄기를 잇자면, 그 길이 틀려진다는
것이다.

한북정맥 전체에 대한 개념과 시작점, 종착점, 탐사제외구역 등에 대한 내용들을
대충 살펴보았으니 이제 길을 떠나야 하지 않을까? 글은 한참 쓴 것 같은데 이제
출발이라니… 자못, 지루한 글이 되지 않을까 심히 염려가 된다.
개인소장목적으로 작성하는 글이라면 별 부담 없이 써 나가련만…
이 글이 종주대에서 원하는 내용이라기엔 지나치게 사설이며 설명이 길다는 생각이
들지만, 일단 써 나가보기로 한다. 본대 출발 한참후에서야 우이동 에서 출발하였고,
포대능선 입구를 돌아서야 본대 후미조를 만났으며, 사패산에서야 본대와 합류했으니,
사패산까지는 거의 개인산행기가 될 것 같다.
이 글을 종주대의 탐사기록으로 남긴다면, 본대대원의 후기 한편을 기록 말미에
첨부하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록자의 변명...
오전 08시 50분.
갑작스레 닦친 집안의 조그마한 일로, 첫구간부터 삐딱선을 타게 되었다.
집결시간에 맞춘다는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고, 산행가능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태에서 조마조마하게 시계만을 쳐다본다. 이미 집결은 거의 끝나갈 시간, 다행히도,
개인사는 그런데로 해결을 보고, 서두르면 단독산행이 될 지언정 첫구간을 끊는
여러 회원님들과 포대능선이나 사패산 즈음에서는 합류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계산을 해본다.

서둘러 도착한 우이동 입구에서 시간을 확인하니 11시 40분이다. 빵 2개, 500ml
우유 1개로 아침을 때우며, 진행코스를 머리속에 담아본다. 김밥하나와 막걸리
세병, 캔맥주 두개를 배낭에 챙기고 나니, 달랑 수건 1장 들어있던 배낭이 제법
묵직해진다. 지금즈음이면 빠르면 만장봉에 도착했거나, 중간에 잠시 산행소개
시간을 가졌을 터, 주능선 입구에 도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니,
발걸음이 무거워 질 것 같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던가! 우이공원 입구, 그린파크호텔 맞은편에 조그마한
슈퍼에서 설치해 놓은 파라솔에 앉아, 등산화끈을 조이며, 복장점검을 하며 최대한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준비를 해본다. 중간에 여의치 않을 경우 탈출로까지
계산해본다. 적절한 판단은 각 봉우리를 밟는 순간마다 다시 내려야 할 듯하다.

어제 사전답사를 마친 만큼 실제로 정맥종주의 시작점이 되는 우이암까지의
어프로치구간에서 최대한 시간을 줄여야 할 듯하다. 우이암 매표소를 통과하는
시점부터 속력을 붙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우이암(牛耳岩, 542m)에 서다.
12시 50분.
드디어 출발지점에 섰다. 이곳까지 어프로치를 하는데, 쉬지않고 이동했건만 1시간
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우이암! 소의 귀를 닮은 형상이라 하여 이름지어졌다는
우이암 일대의 바위는 그 경관이 뛰어났다. 바위자체로서의 경관도 경관이지만,
동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도봉동, 방학동 일대와 그 건너 수락산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이암 정상에서 진행코스를 살펴보기에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다.
눈앞에 펼쳐진 도봉주능선과 포대능선은 한눈에 그 산줄기를 살펴볼 수 있으며,
북쪽으로는 멀리 오늘 목표지점인 사패산을 돌아 울대고개까지… 본격적인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화창한 날씨라 모든 사물이 뚜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
약간 돌아 북쪽으로 늘어진 오늘 진행코스의 형상이 전체적으로 활의 모양을 한
것 같다. 우이암 아래쪽에 위치한 원통사에서 울리는 목탁소리가 이곳까지
뚜렷하게 들려온다. 만일 이 곳 원통사와 보문산장 쪽으로 어프로치를 하게 된다면,
원통사에서 식수를 보충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제법 깔끔하게 정비된 샘이 원통사 입구 아래쪽에 자리하고 있다.
약간은 냄새가 나긴 하지만, 화장실도 마련되어 있다. 큰 일이 걱정된다면,
능선 한자락에 폭탄설치를 하기 보다는 이곳에서 미리 해결하고 오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도봉자락은 주말뿐 아니라 평일에도 사람이 제법 다닌다고 하니,
능선상에서 사람의 눈을 피하려면 제법 다리품을 팔아야 하지 않을까~

가쁜숨을 고르고, 이내 도봉주능선을 타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빡세고,
무식하리만치 바쁘게 이루어지는 산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오늘은 상황이
상황인 만큼, 서둘러야만 한다. 우이암에서 시작되는 도봉주능선에는 나무계단이
깔끔하게 설치되어 있다. 폭도 제법 넓어서 두세명이 함께 걸을 수 있을만큼
넓직한 계단들이다. 북쪽으로 향한 이 계단을 따라 조금 내려서다 보면,
나무계단 왼편으로 조그마한 전망대와 함께, 산새를 설명하는 안내판이
부착되어 있다.
나무계단으로 이어진 제법 심한 내리막과 오르막을 한바탕 거치고 나면,
본격적인 능선길로 접어든다. 이곳에서는 길을 찾기 위해 어려워 할 필요는 없다.
조금 진행하면, 헬기장을 하나 지나고, 오목하게 패여진 능선자락에 북서쪽으로
오봉으로 향하는 샛길과 동쪽으로 도봉산계곡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나타나지만
표지목이 잘 설치돼 있고, 길 자체가 빠지는 길과 이어지는 길이 확연하게
구분된다. 그저, 진행만 하면 된다. 또다시 한바탕 오름짓을 해야 한다.
서서히 시간에 대한 촉박이 조급함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지나친
서두름이 자칫 다리를 완전히 풀리게 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마음을 다스려 본다.

오후 1시 40분.
한참의 오름짓 끝에 제법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능선자락의 바위모퉁이에서
잠쉬 쉬기로 했다. 맥주 한캔을 따서, 가장 전망이 좋고 바람이 시원한 곳에
자리를 하고 지도를 펼쳤다. 눈앞에 펼쳐진 오봉의 모습은 마치 주먹을 꼭 쥔
모습과 비슷한데, 그 높이가 내 눈높이와 비슷해 보인다.
북쪽으로는 칼바위와 오봉능선이 시야를 막고 있지만, 도봉산 정상이 멀지
않았음을 느낀다. 지나가는 등산객들의 대부분이 내가 있는 곳 주변에서 잠시라도
바람을 쐬이고 지나가는 것을 보며, 내심 자리하난 잘 잡았군 하는 생각을 하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한 중년부부가 지도를 보는 모습을 보며, 어느
산악회냐고 물어오신다. 간단히 산사랑에 대한 소개를 하자니, 사이트는 이미
들어가 보셨다는데, 혹시 모를 일이다. 사이트를 다시 찾아보고 글을 남기거나
하신다는데, 전에도 관악산에서 산사랑 회원들을 본 적이 있다고 하신다.
어느새 2시가 가까워 오고 있다. 잠시라도 쉴 낯이면, 너무도 빨리 흐르는게
시간이다.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간간이 위험등산로 표지와 출입금지, 우회등산로 표지가 있다. 어김없이 출입금지
표지가 보이는 곳엔 커다란 바위들이 가로막고 있으며, 또, 그곳으로 들어가는
등산객들이 적잖게 눈에 띈다. 잠시 갈등을 해 본다. 선발대는 이리로 갔을까?
저리로 갔을까? 이내 답이 나온다. 4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이동했으니, 위험한
길을 선택한다는건 무리이다. 더욱이 첫산행인 회원들도 다수 섞여 있고…
우회하는 등산로를 이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맥종주의 목표가 최고높이의 능선을 고집할 이유는 전혀 없다.
봉우리와 봉우리의 이어짐을 이해하고, 그 능선을 따라 이동하면 되는 것이다.
잠시 생각에 젖었다가 이내 결정을 내린다. 봉우리와 바위의 규모를 보고, 우회하는
길과 넘는 길의 시간적 차이를 직감적으로 판단을 내려본다.
굳이 쉽게 넘을 수 있는 길을 먼 길을 돌아갈 필요도, 의욕이나 욕심만을 앞세워
무리한 시도를 하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것도 아닌, 적절한 판단.
일단, 방향을 잡았으니,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쇠사슬과 동앗줄로 이루어진 안전장치들이 눈에 띄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능선자락에 늘어진 사람의 행렬이 보이기 시작한다. 정체된 도로를 보는 듯,
예상했던 일이지만 또다시 암담해진다. 낮은 바위는 그대로 뛰어오르고,
사람들이 밀린 곳에서는 옆으로 빠지기를 반복하며 자운봉과 신선대 중간즈음의 어느
암릉 한쪽 바위위에 올랐다. 배고파서 안되겠다. 준비한 김밥을 반찬없이 먹어치운다.
워낙에 정신없이 달려온 터에 어느바위가 어느바위이고, 어느 봉우리가 어느
봉우리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물론, 도봉산을 자주 찾는 이들에게는 그 형새와
대충의 위치만 보아도 어느곳인지 명확하게 알겠지만, 많아야 몇 달에 한번, 아니
몇 년에 한번 어떤 계기가 있을때만 찾게 되는 나로서는 그 이름들을 확실히 알기에
어려움이 따랐다. 아마도, 인식형님과 함께 했었더라면, 발끝발끝마다 달라지는
바위들의 이름이며 능선, 지점의 이름을 정확히도 알려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확실한건, 지금의 위치가 자운봉과 신선대 중간의 어느 부분이란 것과,
지금까지 지나온 길이, 한북정맥 종주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것 정도이다.
아마도, 자운봉을 거칠때는 우회한 듯 하고, 몇 몇 바위들은 그냥 넘어서 건넌
듯 하다. 기회가 된다면, 이 도봉산을 자주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먹는 도시락은 나누어 먹는 정겨움은 없지만, 신속히 해결 할 수 있다는
나름의 장점이 있다. 이것은 시간과 승부를 봐야 하는 산행에서는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 할 수 있는 요소이다. 물론, 나는 힘들게 하는 산행도, 시간에 쫓기는 산행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산이 될 수 있는 산과 동화될 수 있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산행을 좋아한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때이니만큼...
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혼자서 먹는데 전망이라도 좋아야지...
부근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에 올라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아픔의 역사를 간직한 포대능선 (신선대 ~ 649m봉)
지도상으로는 지금 이동하고 있는 곳이 포대능선의 한 부분인 것 같다.
일제 때 일본군들이 이 능선을 따라 곳곳에 대공포를 설치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그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몇걸음 옮기지 않아, 반공호를 자갈로
뒤덮은 넓직한 바위(?)가 나타나고, 삼각점이 보인다. 시간이 허락하면,
안내문이라도 찾아보련만, 대충, 신선대 즈음이 아닐까? 그리고,
일제때 설치 되었다는 대공포가 있던 곳이 아닐까? 하는 추측만 하고 걸음을 옮겼다.
다음에 다시 찾게 되면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고...
이제는, 포대라는 이름대신 더욱 그럴 듯한 이름을 지어줄 때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씁쓸한 생각을 해본다. 조금 더 지식이 깊어지면, 나혼자 불러줄 이름이라도
붙여주어야겠다.

얼추 본대의 후미그룹 정도는 이제 눈에 들어올 법도 한데,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늘 산행이 수월하게 진행된 모양이다.

오후 2시 50분.
산에서 달린다는건 거의 금기에 가깝지만, 보이지 않는 후미에 마음이 조급해지며,
거의 달리다 시피 능선을 움직이다 보니, 느낌이 이상하다. 길이 끊긴 것이다.
다행히 많이 들어오지는 않은듯 하다. 비교적 높은 곳이라, 능선의 방향을 가늠해
본후, 방향을 바꾸는데 채 50m 나 움직였을까?
드디어 낯에 익은 모습이 보인다. 만섭형님과, 정회형님을 비롯,
예닐곱의 선배님들이 쉬고 계셨다.
행색을 보아하니, 어젯밤 야영조들의 모습이 분명하다. 당일산행에 어울리지 않는
큰 베낭이며, 늘상 보이던, 그 느긋함... 순간, 다리가 한 순간에 풀린다.
아찔함을 느끼며...
다시는 이런 무식한 산행은 안하리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헥헥거리는 모습이 안 쓰러운듯, 수고했다는 격려의
말씀에, 오히려 죄송한 마음이 앞선다. 경림누님의 노골적이면서도 야시시한,
그러나 밉지않은 찐한 농담에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고... 이 위기를 모면하려면
아무래도 빨리 도망가야 할 것 같다.
먼저 가서 막걸리 마시고 있겠노라며, 일행들을 뒤로 하고 대현형님과 함께
앞서나간다.

지도상으로는 한번의 오름짓을 더 거치고 내리막으로 접어들어야 하는데,
그 정상이 바로 여기인가 보다. 엄청난 규모의 바위가 앞을 가로막고 우측으로
내려서는 길이 있다. 일단 바위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나, 이내 내려서는 길로
가야함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 바위꼭대기가 포대능선의 마지막 지점인
649m봉인것 같다. 우측으로 내려서서 사패능선으로 향하는 길 역시 나무계단으로
닦여져 있다. 간간이 눈에 띄는 사패산을 향한 표지목엔 그 거리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본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이 멀지않았음에 기뻐하며, 분주히 움직인다.

사패산(賜牌山, 552m), 그리고 산신령님께 올리는 막걸리 한 잔...
오후 3시 30분경.
사패산에 이르는 마지막 봉우리인 505m봉을 넘어서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한 발치 위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다지 좋지 않은 시력으로
인해 누군가를 한참 살펴봐야 했지만, 이내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고,
한규형님과 경자누님을 비롯한 대여섯명의 무리가 산자락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서둘러 옮긴 발걸음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에 약간의 찡함을 느끼며,
서둘러 달려간다. 시원한 얼음물로 목을 축이며 이런저런 인사를 나눈 후,
먼저 올라가서 쉬겠노라며,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이대로 늘어 앉았다가는 마냥
퍼질것만 같은 불안감에 얼마 남지 않은 사패산 정상까지 올라가서 쉬고 싶었다.
사실은, 그 보다는 걸죽한 막걸리 생각이 간절했던 이유가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사패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약간의 암릉으로 이루어졌지만,
위험하거나 어려운 길은 없다.


오후 3시 55분.
얼핏 보아도 삼십명 가량 되는 대원들이 삼삼 오오 널부러져 앉아서 마음껏 휴식을
취하고 있다. 서로 산행지가 틀려 오랜만에 보는 회원들, 거의 매 산행을 함께
하는 회원들, 늘 묵묵히 지켜봐 주시는 원로회원님들, 모두가 반갑기 그지없다.
한 순간에, 다리가 풀리는 듯 하다. 한 숨 돌린 후, 주어진 임무(명찰 나눠주기,
제문 출력한것 전해주기 등...)를 완수하며, 이런저런 인사를 나눈다.
사패산 정상(552m)은 넓직하고 평평한 바위로 되어있어 삼사십명이 모여 앉아
식사를 해도 그 공간이 넉넉할 정도로 자리가 넓다. 또한, 지금까지 지나온
도봉산의 여러 능선과 북한산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멋진 곳이다.
사패산(賜牌山)이라는 이름은 조선조 선조의 6째 딸 정휘옹주를 유정량에게
시집 보낼 때 왕이 하사한 땅이라 하여 마패를 하사한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군사지역으로 묶여있다 풀린지 얼마 안 되었다는데, 도봉산이나 북한산에 비하면
작고 아담하지만, 아직까지 사람의 발길을 덜 탄 탓에 한적하고 조용한 산행을
즐기기에 적당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의 계곡에는 아직까지도 가재를 비롯하여
날도래나 강도래등 1급수에서만 서식하는 여러 수중생물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언제고 조용하고 한적함을 즐기고 싶을 때 한번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후 4시 20분.
이곳, 정상 바로 아래에서 한북정맥의 무사종주를 기원하는 산제를 지내기로 한다.
정상의 바위 바로 아래쪽으로 돌아 내려가니, 조그마한 암릉 아래에 제법 그럴듯한
갈림길을 낀 터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종주대장 양돈형님의 산제및 한북정맥종주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듣고, 미리 준비해온 제수를 준비한 후에, 태열형님
진행아래 산제를 올렸다.

양돈형님의 그럴듯한 독축(讀祝, 제주가 그동안 사고없이 산에 다닌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시하고, 안전한 산행을 기원하는 등 소망사항 등을 고하는 것.)
내용에는 적잖이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내용들이 있었고, 청춘(?)남녀들의 짝을
제수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내용또한 빠지지 않았다. 한 사람 두사람, 돌아가면서
예를 갖추고, 나 또한 무사종주를 기원하는 헌작(獻爵, 산제에 참가한 사람 중 절을
하고 싶은 회원이 있으면 누구라도 잔을 올리고 예를 표하는 것.)을 올리고
예를 갖추었다.

제를 마친 후 간단히 음복(飮福, 제사상의 음식을 참석자들이 골고루 나누어 먹는
것. 제사상의 음식을 먹으면 연중 탈이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 철상의식.)을 하는
사이 가장 후미에서 제법 많이도 늦어졌던, 야영조가 도착하기 시작했다.
많이 지쳐보이는 모습이, 조금은 안타깝기까지 하지만, 그래도 약간의 음식이나마
함께 나누며 음복을 할 수 있었으니, 종주기간 내내 아무 탈 없이 마치기를 기원해 본다.
<산제를 지내는 회원들>





<독축(讀祝)을 하고 있는 종주대장 주양돈(하눌)님>











<촬영:박상준(박상준)님,>

오후 4시 55분.
오늘 첫 구간의 마지막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아무 생각없이 발길을 옮긴 것이
실수였을까? 지도상으로 보이는 현재 위치가 애매하다. 산의 형새로 보아서는 어느
능선자락의 밑에서 돌고 있는것 같은데, 조그마하게 나 있는 소로를 따르다 보니
움푹 패인 계곡의 시작부분을 안쪽으로 돌고 있는 듯 하다. 두 세번, 물길을 건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빽(back)'이 선언되고, 역시 길을 잘못 들었음이
확인된다. 그래도, 이 정도의 백은 정말 양호한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한강기맥의 백의 역사를 상기하며, 이만하기를 다행이라 생각하고 서둘러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오후 5시 40분.
중간에 갈림길에서 다시 길을 잡고 나아가긴 했지만, 몇 가지 지형지물을 확인한
결과 8부능선 정도 되는 것 같다. 제대로 된 능선을 확인하였으므로, 굳이 능선의
높은곳 까지 오를 필요는 없을 듯 하다. 그대로 진행하였다. 나중에 확인한 것이지만,
우리가 처음 진행하였던 길은, 사패서능선과 한북정맥길의 중간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인것 같다.
사패산에서 울대고개로 내려서는 길을 보면, 제법 여러 갈래의 길이 나 있다.
여기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다른 길로 내려서게 되는데, 표지목이 없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길이 어렵게 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이암에서 사패산까지의 능선이 워낙에 확실하게 구분되어 길찾기에 대한
주의를 망각하게 되어 버린 우를 범한 것이다. 이곳을 진행할 때면, 사패산 정상에서
한번쯤 하산로를 주의깊게 확인하고 움직일 필요가 있다.
서너곳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정상 바로 아래에서 펼쳐지는데, 무턱대고 방향만을
믿고 발길을 옮겼다가는 촘촘한 계곡의 안쪽으로 가로지르게 된다.
다행히도 능선꼭대기로 이어지는 양주군과 의정부시의 경계면에 뚜렷한 진행로가
있으므로, 그 길만 확인 한다음 길을 나서면, 길을 잘 못 들지는 않을 것이다.
주의할 것은 북쪽으로 향한 이 능선길에 접어들기 위해서 동쪽으로 약간 진행을
해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북쪽으로 향한 이 길을 따라 약 400~500m 진행하다 보면 능선의 방향이 서쪽으로
도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능선 끝자락에 좌우로 길게 늘어진
39번 국도가 보인다.

산행기점. 울대(鬱垈)고개
오후 6시 08분.
드디어, 39번 도로에 내려섰다. 오늘 첫 구간의 종료지점 울대고개.
이 곳 도로 건너편의 마을이 울띄마을이고, 다음 구간에 지나야 할 마을이다.
먼저 내려선 회원들이 길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몇 몇은 뒷풀이 장소를 물색하기에
분주하다. 적당한 장소를 찾기가 여의치 않다. 송추방향으로 약간 내려서니,
조그마한 공장 안마당에 주인장 되시는 듯한 노인장께서 선뜻 자리를 내 주신다.
사장님인지, 공장장님인지 알길은 없지만, 어쨌든, 삼보특수건업 관계자
(자리를 내어주신 분)분께 감사드린다. 어쩌면, 그냥 옆집에 사는 어르신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르신, 고맙습니다.






<간단한 뒷풀이와 소개시간. 촬영:박상준(박상준), 인물:산사랑 회원 다수>

원형으로 둘러앉아 벌어지는 막걸리 파티와 간단한 자기소개... 그리고, 저무는 해...
얼근히 오르는 술기운...
무엇을 위해 그리도 숨가삐 달려왔는가!
어쩌면, 나는 지금 이 순간 막걸리 한 잔을 마시기 위해 달려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라. 덧붙임
한북정맥 종주. 그 첫구간을 무사히 마침을 축하하며, 산행을 계획하고 준비하신
태열형님과 종주대장 양돈형님, 그 외 말 없이 이끌어주신 여러 선배님들, 일일이
나열할 수 없는 여러 회원님들과 처음 참가한 새내기님들, 어찌어찌 함께하게 된
손님들, 모두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이 새롭고도, 특별한 경험이 부디, 소중한 추억과 기억으로 남기를 소망합니다.
긴 글 읽느라, 산행하는 것 보다 더 고생하셨습니다.
다음구간에서 또 만나기를 기대하며...

참고문헌
'한글산경표' - 현진상 저, '도서출판 풀빛' 출판
'태백산맥은 없다' - 조석필 저, '사람과 산' 출판
'한국의 산하' - http://mountains.new21.net
안강님의 백두대간 홈페이지 - http://www.angangi.com
북한산 국립공원 홈페이지 - http://www.npa.or.kr/pukan/
강형구님의 도봉산 홈페이지 - http://www.onedobong.com
여행, 등산 전문 사이트 '산야로닷컴' - http://www.sanyaro.com
그 외 다수의 도서와 홈페이지...
(능력의 한계이군요. ㅠ.ㅠ
혹, 내용의 인용으로 인한 불쾌함이 있다거나,
삭제했으면 하는 부분은 E-mail: stimulus@hitel.net 로 구체적인 부분을
연락주시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예전에 활동하신분이라면서
만섭형님과 구현형님과 우영이모습을..>



작 성 : 김남호(나머)
확 인 : 산행부장 정희식(천연색)

돌아가기 [한북정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