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해외산행

2009 백두산 산행기(남파-서파-북파-천지수면 종주기)3

하눌이 2009. 7. 23. 15:01

 

 

 

남파산문에서 관면봉을 오르는 중간에서 시작된 산행은

금강폭포와 노호배를 거쳐 서파에서 온천지역까지 꼬박 20여시간을 걸어왔다.

남파에서 등산로를 통해서 이곳 까지 왔다는 성취감이 밀려온다.

이제 이곳에서 천문봉은 짚차로 오른다.

2003년에 이곳을 찾았을때 걸어서 천문봉까지 올랐던 흑풍구 능선은 이제 폐쇄가 되어 있었다.

오로지 짚차로만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천문봉에 오르기전에 온천에 들러 이틀동안 산행 피로를 씻는다.

맥주한캔 들고 노천탕에 앉으니 만감이 교차한다.

 

오후 5시까지가 천문봉 오르는 짚차의 운행시간이므로 서둘러 온천을 나왔다.

천문봉에 오르는 짚차는 거칠게 질주한다.

도로를 벗어나면 천길 낭떨어지로 돌진하게 되지만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커브길을 돌때는 타이어음이 귀를 자극한다.

다리에 잔뜩 힘이 들어가고 천정에 달린 손잡이를 잡은 손이 쥐가 날때쯤

짚차는 천문봉 바로 아래 자리잡은 기상관측소에 도착한다.

오늘 우리가 묵을 숙소이다.

 

2003년 이곳을 찾았을때 민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숙박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운무가 가득해서 기상관측소를 정확하게 보지 못했는데 오늘은 화창한 날씨 덕분에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바람은 날려보낼듯이 불어댄다.

 

 

 오늘 산행중 점심을 부실하게 먹은터라 모두들 배가 고프다.

어제 아침을 식당에서 먹고

이제껏 산속에서 도시락과 햇반등으로 끼니를 때운 대원들은

밥과 국 그리고 고기가 차려진 만찬을 즐기고 다시

방안에 모여 앉았다.

산장지기가 유수님 오셨다고 내놓으신 맥주 한박스와

이과두주를 5병씩 몇번이나 추가로 가져다 먹었다.

이과두주에 취하고 맥주에 취하고 백두산에 취하고 사람에 취하고....

 

 

 

 

 

밤 늦도록 먹은 술때문인지 방광의 압박인지 새벽 3시가 안되서 눈을 떴다.

어제 먹은 술의 양에 비하면 몸이 무척 가볍다.

몇몇 대원들은 벌써 일출을 볼거라고 전투복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나도 슬그머니 일어나 따라 나서보지만 아침 가스떄문에 오늘 일출은 안보여줄 것 같다.

 

방으로 다시 들어와 잠을 청해보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4시가 좀 넘은 시간 일어나 짐정리를 한다.

오늘은 6시에 숙소를 떠나 천문봉을 올라 천지를 조망하고 천지 수면으로 내려가

천지 물을 떠서 커피를 끓이고

승사하(달문)을 통해 장백폭포 하단으로 하산해 이도백하에서 점심을 먹고 장춘으로 이동하는 일정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배낭은 산장지기 짚차로 하산을 시키고 대원들은 빈 몸으로 산장을 나섰다.

맨치로님만이 천지에서 먹을 커피와 맥주약간을 배낭에 담아 나섰다.

항상 힘들고 궂은일은 뒤에서 말없이 하는 모습이 고맙기 그지없다.

 

오늘 안내는 김철이 짚차로 배낭을 가지고 하산을 하고 황해룡이 천지물가로 내려간다.

황해룡은 가이드지만 천지물가는 처음이란다.

따라서 경험이 있는 김철이 천지로 우리를 안내해야 하지만

또다른 산악가이드가 우리를 안내하기 위해 짚차를 타고 천문봉으로 오기로 되어 있고

황해룡 자신이 천지를 꼭 가보고 싶다고 해서 김철과 역할을 바꿨단다.

황해룡이의 직업정신과 근성을 높이 사고 싶은 대목이었다.

 

산장에서 천문봉까지는 10여분 거리

배낭없이 빈몸으로 가는 대원들의 발길은 가볍기만 하다.

 

 

 

천문봉은 아직 이른시간으로 안개가 걷히질 않아서 조망은 별로 였지만 별로 서운해 하는 기색이 없다.

어제와 그저께 이미 천지를 마음껏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조금 후면 천지에 직접 내려가 천지 물로 커피를 끓여먹기로 했지 않는가..

 

 

 

 

천지가 가까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부터는 등산로가 잘 형성이 되어 있지 않고

아주 심한 너덜길이다.

따라서 뒷사람의 발길에 의해 떨어지는 돌에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상황

5m이상의 거리를 유지하고 돌이 굴러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천지 물가는 한적하다

지난해까지 장백폭포에서 계단으로 천지수면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개방되어 있었으나

산사태로 인해 등산로 일부가 무너짐에 따라 폐쇄되었다.

천지 수면으로 오르는 계단을 공사하고 등산로 입장료를 징수하는 한국 기업을 북파 산문 밖으로 내보내기 위한

중국 당국의 힘겨루기 때문에 이런 저런 이유로 등산로를 폐쇄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때문에 천지수면에는 우리 대원들과 그곳에 근무하는 경비대 그리고 매점 직원 몇명밖에 없다.

천지수면에선 대원들은 흥분의 도가니다.

천지물을 움켜쥐고 몸에 끼얹어보기도 하고 시원하게 원샷도 해본다.

 

 

 

커피를 끓이려고 보니 아뿔사!!! 가스를 산장에 두고 왔다.

김철이 보고 챙기라고 했는데 황해룡이한테 인계를 해주지 않고 짚차로 하산을 해버린거다

그래도..

매점에가서 뜨거운 물을 한통 얻어왔다.

천지물로 끓인 물이다.

커피그리고 맥주 와 처음처럼 팩소주를 섞어서 천지 기념주를 한잔씩 하고나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승사하(달문)을 통해 장백폭포로 하산을 한다.

 

 

 

 

 

장백폭포를 내려오니 아래쪽에 금줄(빨간 줄)을 쳐놓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통제구역을 우리는 유유히 통과해서 나온것이다.

우리나라같으면 누군 들어갈 수 있고 누군 통제한다고 난리가 났을 법도 한데

이곳 사람들은 누구하나 시비거는 사람이 없다.

 

30분쯤 걸어내려오면 뜨거운 온천수가 솟아오르는 온천지역을 지난다.

2003년 왔을때는 그냥 노천온천으로 여러군데서 계란을 삶았던것으로 기억했는데

통행로를 나무다리로 정비하고 계란 삶는 곳도 한곳으로 통일해 놓았다.

점점 상업화가 되어 가고 있는 모습이다.

풍문에 의하면 저 계란 삶는곳의 영업권이 우리돈 2억에 팔렸다는 소문이다.

 

 

온천지역을 지나서 셔틀버스를 타고 북파 산문 밖으로 나왔다.

이제 백두산 일정이 모두 끝난 셈이다.

골초 병화가 담배를 꼬나 물었다가 공안한테 적발되었다.

병화 대신 김철이 공안한테 끌려가 가이드 증명서를 뺏기고 돌아왔다.

나중에 찾으러 오란다.

그들만의 방법으로 증명서를 찾아 올 것이다.

 

 

북파 산문을 나온 대원들은 이도백하에서 점심을 먹고

우리 선조들의 역사가 깃든 일송정을 지나 용정에 도착했다.

용정의 조선족들이 정착할때 이용했다는 용정샘을 둘러보고 문익환 목사가 다녔던

용정중학교를 거쳐서 장춘으로 이동했다.

 

 

 

 

 여행이란 막상 떠나는 순간보다 떠남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더 행복하고.

현실에서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위한 준비의 시간이다.라는 말귀가 떠오른다.

백두산 산행을 기획하는 동안 무척이나 행복했고

같이 해서 행복했고

이렇게 추억을 남길 수 있어 행복하다.

이 시간이 있도록 같이 함께 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