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여 동안 진행해온 백두대간 종주가 그 끝을 보이고 있다. 산사랑에서 진행하는 3번째 종주대다. 97년 1차 종주를 주관했던 나로서는 그 끝의 설레임과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두구간을 남겨놓고 종주대장이 고민이 많다. 한계령에서 미시령까지..
1차 종주때는 한계령에서 출발하여 공룡능선을 지나 마등령에서 야영을 하고 다음날 미시령까지 진행했었다. 이번에도 그것을 기대하고 친구들하고 같이 가기로 소문을 내놓은 상태인데 회장님께서 멋있는 계획을 내놓았다. 정기산행팀은 따로 진행을 하고 대간팀은 1박2일코스를 당일에 진행한단다. 일반 산악인의 운행시간으로 15시간 30분 거리..
5개산 종주 이후 장기산행을 해보지 않은 상태이므로 오랜만에 체력 테스트도 해볼겸 도전하기로 했다. 산사랑 식구들과는 별도로 고등학교 친구들을 중심으로 팀을 구성했다. 정기산행팀 4명(광모, 영선, 순두, 규봉) 대간팀 5명(나, 병화, 타고, 승호, 친구) 이렇게 9명이 산사랑 식구들과 합류했다.
오랜만에 서초구청 주차장을 찾았다. 매주 산을 가기위해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오던 곳이다. 왁자지껄 30여명의 회원들을 태운 버스는 설악을 향해 출발했다. 여느때 처럼 뒷자석에서는 막걸리 파티가 벌어졌지만 난 별로 생각이 없다. 내일 산행이 내심 긴장이 된 모양이다. 당초에 미시령에서 비박을 하기로 한 계획을 바꿔서 남교리 야영장에서 비박을 하고 세벽에 미시령으로 이동을 하기로 했다. 저녁식사를 식당에서 해결하고 공기밥도 하나 준비를 한다음 약 2시간 정도의 수면을 위해 바닥에 침낭을 깔았다. 그러나 잠은 들지 않고 비몽사몽을 헤맨 상태에서 기상, 미시령으로 이동했다.
세벽 00시 50분 버스에서 내린 9명의 산객들은 산속으로 녹아들었다. 새벽이슬이 많이 내린 산은 고즈넉하기만 하다. 하늘에는 보석을 박아놓은 듯 사월 초나흘의 하늘을 장식하고 있었다. 쏟아질 듯한 별빛을 받아본지가 언제이던가? 능선에서 별을 보고 누워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곧이어 집채만한 바위돌들이 앞을 막는다. 국내 최대 너널지대이이다. 바위로만 이루어진 곳이기 때문에 등로 찾기가 어려울거라고 생각했는데 야광봉을 박아놓았다.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못들어가게 막아놓은 등로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해놓은 것이다.
1318봉을 좀 못미쳐 남숙님의 속도가 많이 늦어진다. 산행실력을 익히 들어 알고 있어 걱정하지 않았는데 바위에 익숙하지 않아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1381봉(황*봉)을 좀 못미쳐 용욱이와 동규형에게 마등령까지 진행한후 다음 일정을 상담하고 동규형은 계속 진행해줄 것을 요청하고 나머지 일행은 먼저 진행을 한다.
3시 40분 저*령에서 약간의 간식거리로 허기를 채우고 다시 된비알을 이루고 있는 너덜지대를 진행한다. 정상부근에 거의 올라왔을 때 뒤쪽에서 남숙님, 동규형 그리고 용욱이 해드렌턴 불빛이 보인다. 핸디를 꺼내 들었다. "CQ CQ DS1QVG, 당국은 DS1EYM 잘 들리십니까?“ 걱정말고 진행하라는 당부말씀이다.
4시 10분 정상부근에 큰 바위가 나타났다. 바위에 올라가 길을 찾아보았으나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때 치성형과 승호는 이미 앞서가서 불러도 대답이 없다. 좀전에 밑에서 간식을 나눠먹으며 치성형이 정상부근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올라왔던길을 되돌아 내려와 왼쪽을 되집어 보니 희미한 등로가 나있다. 뒤에 오는 팀에게 핸디로 방향을 일러준 다음 약 20분쯤을 진행했는데 느낌이 이상하다. 아무리 통행제한 등산로지만 이렇게 원시림이 형성되기는 힘들다. 지도를 꺼내 지도 정치를 한 다음 방향을 설정해보니 방향은 틀림없다. 약간 미심쩍은 마음은 있었지만 희미하게나마 길이 형성이 되어있고 방향을 맞으니 그냥 진행을 했다. 그러나, 희미한 등로가 이제 없어졌다. 절벽과 암벽이 앞을 가로 막았다. 이제 날이 밝아 왔다. 랜턴을 꺼도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뒷 팀에 다시 길을 잘못든 것 같으니 그쪽에서 다른 등로를 찾아보라고 연락을 하고 잠시 생각을 했다. 어디서 잘못됬나? 등산로가 지금까지 왔던 길보다 지나치게 희미하게 형성되었을 때 아니라고 판단을 했어야 했다. 아래를 보니 너덜지대가 형성이 되어 있다. 너덜지대까지 내려가면 상황판단을 할 수 가 있을것 같다. 되돌아 가자는 병화의 말을 무시하고 너덜지대까지 접근을 시도했다. 원시림을 헤치느라 온몸이 나뭇가지와 물로 범벅이 되었다. 너덜지대에 도착하니 동쪽하늘에서 붉고 둥그런 해가 떠오른다. 5시 6분 벌써 한시간째 길을 잃고 헤매이고 있다. 오늘 가야하는 길이 얼마인데 여기에서 이런 꼴을 하고 있다니.. 떠오르는 태양이 전혀 아름답지 않다. 그러나 리더는 팀원들에게 불안한 모습을 보여서는 절대 안된다. 일행들에게 소리쳤다. 야!!! 해가 뜬다. 정말 멋있는 일출이다. 애써 흥분한 모습으로 소리를 쳐본다. 병화와 타고 그리고 친구 이렇게 네명이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멍한 모습으로 서있다.
결국 처음으로 되돌아 왔다. 날이 밝은 상태에서 처음 헤매였던 정상부근 바위에 올라보니 바위 너머에 너무나 뚜렷한 등로가 발달되어 있었다. 그 허망함이란...


길을 잃고 헤매이던중 떠오르는 태양(이남숙님 사진)
1시간 40여분의 알바를 마치고 등로를 찾아 들었을땐 이미 많이 지쳐있었다. 병화의 스텝이 자꾸 꼬인다. 치성형과 승호는 이미 마등령까지는 도착해 있을 시간이다. 우리 뒤에서 오던 남숙님과 동규형 그리고 용욱이도 앞서서 갔다. 1시간쯤 진행했을 때 병화가 종주를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전체적인 진행속도를 고려해서 병화와 타고는 천천히 진행을 해서 마등령에서 비선대로 하산을 할 수 있도록 안내을 하고 친구와 나 둘이서 이제 속도를 내서 진행을 해본다. 1시간 40분을 허비했으니 한계령에 도착시간을 맞출려면 빠른 속도로 진행을 해야 한다. 마등령을 좀 못가서 용욱이와 남숙님을 만났다. 그들 역시 마등령에서 중간에 내려간단다. 햄을 이용해 정기산행 본대와 교신을 해서 중간에 내려간 사람들 픽업을 부탁해놓고 마등령에 도착하니 동규형이 기다리고 있다.
7시 50분 마등령은 이미 안내산악회에서 온 산객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가한 산행길은 이제 기대하기 힘들다. 한계령 도착시간을 4시 30분에서 6시로 수정하고 여유있게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빨리 갈 수도 없다. 이미 만원이 된 등산로에는 추월할 수 없는 길이다. 나한봉에 올라서야 비로소 설악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마등령 아래 설악동쪽으로 금강굴이 있는 적벽이 우뚝 솟아있고, 남동쪽으로 펼쳐진 천화대 능선과 범봉 그리고 우리가 진행해야 하는 1275봉, 그 너머로 화채봉과 대청 중청 소청 그리고 끝청에서 귀때기청봉을 거쳐 안산까지 이어지는 서북주능, 그 밑에 수렴동에서 봉정암까지 걸쳐져 있는 용아장성까지..
나한봉에서 1275봉까지는 등산객들이 줄을 섰다. 특히 나한봉 아래 릿찌길은 그냥 서서 20여분을 기다렸다. 줄잡고 20여미터를 내려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아가씨 아줌마들이 서툴러서 그렇다. 이곳을 지나고 동규형은 볼수가 없었다. 나하고 친구를 버려둔채 혼자 내 달린 모양이다.
9시 20분 1275봉. 공룡능선 중간쯤에 있으면서 깎아지른 바윗덩어리 모습이다. 주 등산로는 1275봉 오른쪽으로 비켜간다. 친구와 나는 배낭을 벗어놓고 1275봉 정상을 올랐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약간 위험하게 바윗길을 가야하지만 올라가면 환상적인 설악의 모습이 기다리고 있다. 정상에 오르면 설악의 중심 서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천상의 꽃이라는 천화대 능선 끝인 범봉이 발아래 자리잡고 있다. 범봉에서 비선대까지 이어지는 아찔한 능선 천화대. 등산학교 졸업등반으로 천화대 등반을 했던 때가 언제였던가. 그때 그 친구들이 보고싶다. 1275봉 정상은 대부분 사람들은 오르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경험자들의 안내에 따라 조심스럽게 올라야 하며 오르는 길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선대에서 바라본 공룡능선 중간에 뾰쪽한 봉우리가 1275봉(오동규님 사진)
1275봉에서 신선대 까지 가는길은 고행길이다. 오르락 내리락을 계속해서 반복해야 하면 등산로 역시 작은 너덜길로 되어 있기 때문에 까다로운 길이다. 2시간정도 진행하면 신선대가 나온다. 이곳 역시 풍광이 대단한곳이다. 사진 작가들이 앵글을 고정시키고 1275봉을 중심으로 내설악과 외설악을 오가는 구름과 산의 조화를 잡아내느라 여념이 없다. 신선대에 올라서면 비로소 휘운각 대피소가 보이고 앞쪽에 대청 중청 소청이 그 위용을 자랑하듯 자리잡고 있다. 휘운각에서 소청을 오를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 단숨에 고도를 500m를 올려야 하는 고행길이다.
11시 50분 휘운각 대피소, 캔맥주 하나를 사서 친구와 나눠 먹었다. 이곳은 시원한 물속에 맥주를 담가놓기 때문에 중청이나 소청에서 먹는 맥주와는 다르게 시원한 맥주를 즐길 수 있다. 시간 계산을 해보니 중청산장에서 라면하나 먹고 한계령까지 6시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대청봉 올라갈 시간이 없다. 나보다 발이 빠른 친구에게 먼저 가서 대청봉을 돌아본 다음 중청으로 내려오면 내가 라면을 끓여 놓겠다고 먼저 보냈다. 계곡물에 식수를 보충하고 소청으로 오르는 철계단에 발을 올린다. 이제 많이 지쳤나보다. 발걸음이 많이 무겁다. 고도로 500m 정도니까 5번정도 쉬고 올라가면 되겠다. 설악산 등산로는 지금 대대적으로 보수중이다. 헬기가 하루종일 등산로 보수 물품을 수송하느라 분주하다. 고도계를 보니 1100m를 가리키고 있다. 고도계가 1250m정도를 가리킬 때 갑자기 허기가 진다. 생각해보니 오늘 변변히 먹지도 않은것 같다. 계단 위쪽에 자리잡고 앉아 김치하고 밥을 꺼내 까칠한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가야되니까.. 올라야 되니까 먹어야 한다.
소청으로 오르는 길은 힘들다. 이미 12시간 가까이 좋지 않은 등산로를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한 상태이기 때문에 더더욱 힘든지 모르겠다. 가쁜숨을 몰아쉬고 소청에 도착하니 다시 중청으로 오르는 오르막길이 기다리고 있다.

중청산장의 내친구 이승호(오동규님 사진)
1시 20분 중청산장, 한무리의 등산객들이 진을 치고 앉아 중식을 즐기고 있다. 나는 한쪽켠에 배낭을 벗어두고 물을 끓이기 위해 준비를 해놓고 신발을 벗었다. 고생한 발을 위해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고 쉬게 해주었다. 물이 끓고 라면이 익을 때 쯤 친구가 대청에서 내려왔다. 배낭에 모셔놓았던 소주1병을 꺼냈다. 라면 국물에 소주 한병을 친구와 함께 비우고 지금까지 신었던 양말보다 좀더 두꺼운 양말로 갈아 신었다. 발이 많이 지쳤기 때문에 좀더 쿠션을 보강 해 주어야 한다.
2시 10분 라면 한 그릇에 소주 몇잔에 여유가 생겼다. 중청을 출발해 끝청에 도착하니 2시 50분.. 이곳이 서북 주능의 시작이다. 한계령 건너편으로 점봉산이 보이고 남서쪽으로 주걱봉 그리고 귀때기청봉과 안산이 누워있다. 끝청에서 1시간 남짓 길은 설악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육산의 등산로를 만날 수 있다. 내리막길의 부드러운 흙길. 라면과 소주로 기력을 회복했기 때문에 여유롭게 산행을 즐긴다.

끝청에서 바라본 서북 주능
그러나 서북주능에서 한계령으로 삼거리까지는 만만하지 않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구조대 번호가 9번으로 인식되는 지점부터 길은 다시 악산에 걸맞는 등산로가 형성된다. 바윗길과 비탈이 어우러진 별로 달갑지 않는 길이다. 앞으로 남은 길은 4km정도.. 한계령 삼거리까지는 구조번호가 5번이므로 약 1.5km가 남았다. 삼거리까지 남은 1.5km는 유난히 지루하게 느껴진다.
4시 40분 한계령 갈림길이다. 직진을 하게 되면 귀때기청봉을 거쳐서 안산으로 가고 좌측 내리막길로 내려서면 오늘의 산행 종료지점인 한계령이다. 이제 1시간여를 진행하면 산행은 끝난다. 하산 길? 아니다. 한계령으로 하산하는 길도 두 번에 걸쳐 된비알을 넘어야 한계령으로 도착할 수 있다. 이미 지쳐있는 육신이 오르막을 만나자 거부반응이 나타난다. 속으로 육두문자가 올라온다. 그러나 어떡할 것인가? 넘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함을... 두 번의 된비알을 넘고나니 다행히 등산로가 정비되어 돌로 잘 다듬어져 있다. 몇 번에 걸쳐 이길을 걸었지만 이 길은 경사가 심하고 험하기로 유명해 하산길을 걱정했으나 잘 다듬어진 등산로가 반가울 따름이다.
5시 55분. 목표시간보다 5분 먼저 한계령에 도착했다.
계석이형이 지키고 있다가 일행에게 안내를 해준다. 일행 모두 일어서서 완주를 축하해 준다. 반갑고 고마운 지기들이다. 정기산행팀이 안산에서 뜯어온 곰취에 삼겹살을 싸들고 소주한잔에 취해본다. 기분 좋은 취기가 몰려온다. 17시간 산행을 접는다.
같이 하신 모든 분들 수고 많이 하셨고 감사드립니다.
출처 : 설악산 미시령에서 한계령까지(5/19-5/20)
글쓴이 : 돼지아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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