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기맥 구간종주 4구간 산행일지
1. 산행구간: 1209봉 지난 안부 - 1464봉 - 계방산 - 운두령
2. 소 재 지: 강원도 홍천군 내면,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3. 사용지도: 1/50000 도암(道巖) 봉평(蓬坪), 1/25000 진부(珍富) 노동(路洞)
4. 일 시: 2001.04.07 - 2001.04.08 (1박 2일)
5. 날 씨: 흐린 후 맑음
6. 교 통: 25인승 전세버스
7. 참가인원: 14명
구태균(NADA3) 김경림(greyeyes) 김경애(기쁘미)
서민영(메사랑) 오경춘(okchoon) 오인식(심리전)
이은영(그리고리) 인치성(inhjin) 정건순(JBJ0530)
정구현(백두주막) 정해양(gogo21) 주양돈(하눌)
한내형(인터넷)
8. 산행일정
2001.04.07 17:10 양재동 서초구청앞 출발
20:40 방아다리약수 산장 도착 및 휴식
2001.04.08 05:10 기상 및 아침식사
07:15 동역골로 어프로치 시작(산행 시작)
07:30 넒은 길 흔적 끝(곧이어 합수점)
07:50 두번째 합수점(1462봉쪽으로 오르는 길 갈림 삼거리)
08:30 작은 지능으로 붙음
08:40 주능선 도착(1208과 1209봉 사이 안부)-09:00 출발
09:20 국립공원 표지석(북쪽을 알리는 화살표가 뚜렷)
10:00 1462봉
11:00 1548봉(계방산 전 봉우리)
11:35 계방산 정상 - 11:45 출발
12:00 소계방산
12:20 공터 - 선두 만남
13:30 탈출 시작
15:00 운두동 도착(운두송어횟집)
15:30 창촌(내면) 중국음식점 도착, 식사 및 휴식
17:00 서울로 출발
18:20 용두휴게소 도착(봇짐정리)
21:50 서울역 도착 및 해산
9. 후기
등산학교 9기의 시작으로 평소보다 적은 인원이
5시를 조금 넘긴 시각에 오붓한 분위기로 출발한다.
궁내동 톨게이트의 상하행 게이트를 조절한 탓에
많이 밀리는 듯 하던 고속도로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버스 전용차선을 달리는 우리 앞에 옵티마 승용차 한대가
무슨 배짱인지 낑겨 있다.
돈 좀 벌어보자는 데 우리 모두 뜻을 모아
종철님이 앞차에 바짝 붙고 태균님이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런데 앞차에서 눈치를 챈 모양이다.
전용차선을 빠져 나가더니 잠시 후 우리를 바라보며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차선을 왔다갔다하며
우리에게 화풀이를 하는 듯 하다
똥 싼 x이 큰소리 친다더니 꼭 그 꼴이다.
막걸리의 순배는 돌고 돌지만
해양님이 술을 마다한다.
나도 많이 하는 술은 아니지만 자제한다.
문막휴게소를 들리는 게 일반적이지만
오늘은 여주휴게소에 들려 출발전부터 들이부은 것에 대한
일차적인 정리를 했지만 치성님의 바이오리듬(?) 탓으로 중간에
간이휴게소를 만들어 보기도 한다.
어둠이 깔리는 고속도로를 버스는 섬찍하도록 질주를 한다.
속사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나 간혹 나그네의 발길을 끄는
음식점들의 불빛을 제외하면 어둡기만 한 길을 따르며
방아다리약수 가는 길을 놓치지 않으려 눈에 불을 켰지만
결국에는 지나쳤다 되돌아 나와 제길을 찾아든다.
약수를 가기 위해 넘는 길은 제법 해발을 높이는(약980m)
고개다. 포장길이지만 겨울에는 체인을 착용했다해도 승용차로는
간단치 않을 정도의 경사를 이루고 있다.
길가에는 아직도 허옇게 잔설들이 쌓여있고 도로에는 겨우내
뿌린 모래가 도로를 덥고 있을 정도로 많이 남아있다.
대장이 야영하기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자고 했지만 그럴듯한
곳을 발견하지 못하고 고개를 넘어서 잠시 내려서니 왼쪽으로
방아다리약수 산장입구이자 국립공원 매표소다.
대장의 survey 결과 분위기가 짱이라며 약수산장에서의 민박을
제안한다. 잠시 이러니저러니 하다가 민박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고 전나무 잇깔나무가 도열한 산장가는 길을 따라 들어선다.
보름인지 구름 한점없는 하늘에는 동그란 달이 휘엉청하고
투숙객들이 없는지 조용하기만 하다.
'ㄷ'자로 지어진 산장의 방은 툇마루 밑에 군불을 때도록
아궁이가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영낙없는 시골 사랑방이다.
산장지기는 우리에게 약수는 조기, 물은 요기서 해결하고
화장실은 어디메고, 불을 지펴 방을 데피는데 2시간 정도
지나야 따듯하겠으며, 불은 자기가 조절하겠다는 (새벽녘에는
너무 뜨거우니) 등 안내를 해준다.
배낭을 ?E마루에 주-욱 부려놓고 마당으로 내려서기 전
중뜰에 주방을 차린다.
인식님 가져 온 별식인 사철탕과 태균님의 김치찌게 그리고
밥, 물만두 등이 일렬로 늘어선 버너위에서 김을 뿜는다.
4월 7일, 민영님 귀 빠진 날이란다.
그런데 케익이 좀 별나다. 일회용 도시락에 담긴 순대에 하얀
촛불을 꽂고 둘러 모여 축가를 부른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촛불이 꺼지고
박수를 치더니 난데없이
'아이고 아이고.....'
웬 곡소리... 도대체 뭐 하자는 건지 원
이것도 퓨전인가 ???
그리고는 샴페인을 흔들어 뿜어낸다.
약수 바로 옆에는 용담(용신각)이
그리고 그 옆 조금 위에 산신각이 있다.
용담은 컴컴하니 꼭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산신각에는 치성을 드리는지 촛불이 밝혀져 있고 인기척도 있다.
뻗어오른 나무들의 끝에 닿은 하늘에는 달빛이 너무도 요염하다.
산장의 밤은 깊어가고 일행들은 하나 둘 방에 들어 둥지를 튼다.
술을 안한 난 바로 왼쪽에 해양님과 함께 일찍
잠을 청하니 몇몇 일행들의 낙주담소가 어렴풋해진다.
앗! 벌써 5시 10분이야
누군가 기상이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리며 늦잠(?)을
즐기는 일행들을 깨운다.
계획상으로는 4시 기상인데 1시간이나 더 자버린 것이다.
아마도 밤새 '난타' 공연을 소리만 감상한 탓일지도...
눈 비비며 아침거리를 준비하는 것은 역시 귀찮은 일이다
저마다 미적거리는 분위기다.
내가 갖고 온 야채샐러드를 꺼내 놓고 먹자니 해양님이 점심때
먹지 그랬냐고 아쉽다는 표정인지 좀 묘한...
그럭 저럭 아침을 때웠지만(즐겨야 하는데) 뒷정리가 더티다
대장이 딱딱거리며 서둘러 정리가 되가지만 코펠 주인공들의
밉지 않은 볼멘 소리가 나직하다.
안개가 제법 짙게 낀 산골길을 따라 버스에 몸을 싣고 산행
들머리인 동역골 입구를 향하는데 어째 느낌이 이상하다.
도상의 거리는 1Km 남짓인데 시간상 한참 지나친 것 같다.
지형을 파악하려니 안개로 여의치가 않다
얼마간의 시간을 소비한 후 다시 뒤돌아 나가며 감을 잡고
계곡 초입에 도착하여 산행은 시작된다.(07:15)
길은 계곡 좌측으로 넒은 농로길 같이 시작되다 잠시 후
물을 우측으로 건너 이어지다 다시 왼쪽으로 건너게 된다.
길가에는 상당히 넓은 밭들이 곳곳에 있고 있다.
누군가 감자밭일거라며 운두령 감자가 유명하단다.
마지막으로 묵밭 같은 곳을 지나며 길은 소로길로 변하고
의도를 알 수없는 잡목치기를 한 탓에 길이 흐릿하고 걷기가
불편하다. 길 흔적이 간혹 끊기기도 한다.
1st 합수점에서 계곡을 우측으로 건너더니 길은
2nd 합수점까지 계곡 우측으로 느긋하게 이어진다.
산행을 시작한지 40여분 지날 즈음 왼쪽 계곡 건너에
심마니터로 보기엔 너무 크게 잘 지어진 비닐 움막을 지나
곧 두번째 합수점을 좌측 아래에 두고 지나려는데 좌측
계곡쪽에서 사람소리가 들린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몇발짝 더 옮기니
일행이 길 바닥에 크게 화살표를 그려 놓은 갈림길이다.
그때사 우리 일행이 예정과 달리 좌측 계곡으로 들었다는 것을
알고 따라서 계곡을 건너 일행과 합류를 하는데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진행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몇마디 의견을 나누다 되돌아 나와 예정대로 길을 잡아 나간다.
계곡은 대체로 순하고 특징이 없다.
수림도 재목감은 없고 잡목 세상이다.
약 20여분 계곡을 따라 오르다보니 좌측으로 돌축대 흔적이
있는 곳을 지난다. 아마도 오래전에 뻘밭(화전)을 일구던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 아닌가 싶다. 잠히 후 우측으로 봉분이
작지만 심하게 헐지는 않은 묘 1기도 지난다.
계곡을 오르면서 박새의 새싹들이 힘차게 솟아오르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은영이가 힘들게 기억을 되살린 만주바람꽃도
곳곳에 다소곳이 예쁘게 피어있어 걷는 마음을 즐겁게 한다.
계곡의 모습이 거의 무뎌지며 좌우로 갈라지는 곳에서 작은
지능으로 붙어 십여분 남짓 된비알에 가쁜 숨을 토해낸다.
북동쪽으로 오대산의 맹주격인 비로봉이 보이는 주능선 안부에는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담소를 나누며 후미를 기다리고 있다.
산행시작 1시간40여분만에 이번 구간이 시작된다.
처음 해발 1200m 대를 이루는 능선상에는 잔설이 별로였지만
해발을 높일수록 잔설의 양이 발걸음을 더티게 한다.
1462봉의 가파른 오름에 들기전에 남쪽으로의 갈림길은 우리가
계곡 오름의 두번째 합수점에서 처음 들어섰던 계곡으로의
하산로일게다.
능선상의 적설량으로 인해 등산로를 밟지 못하고 좌우로 잡목숲을
헤치자니 진행에 어려움이 가중된다.
차돌이도 눈을 밟기가 싫은지 사람들 보다 더 잘 피해 오르다가
곤란한 지경에 처하면 주춤주춤 낑낑대며 앞서가는 주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1462봉 전 봉우리에 힘겹게 올라서 선두인 갑장,민영,치성,태균,
인식님과 합류하고 휴식을 취한다.
서쪽으로 밟아야 할 봉우리 서너개와 겨울 산행지로 잘 알려진
계방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상에도 길흔적과 두세개의 표지기가 보인다.
그 능선 우측으로 깊게 패어내린 계곡에는 이데올로기 싸움의 착잡한
시대가 만들어 낸 작은 영웅 '이승복'을 기리는 기념관과 청소년
야영장, 그리고 좀더 계곡 아래엔 그의 생가가 자리하고 있다.
후미를 기다리다 점심식사를 하기로 예정된 운두령까지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생각에 의견일치를 보고 출발한다.
사실 경방기간이라 모든 취사도구를 차에 두고 산행에 들었다.
1494봉 부근에는 건강한 자작나무군락과 누군가 몇백년전에 석부작을
해 놓은 듯한 바위 위에 걸터 앉은 고목들이 눈길을 끈다.
계방산이 가까워질수록 두터운 잔설량은 우리를 더 괴롭힌다.
잡목숲을 헤치다 눈 위로 나설라치면 종종 허벅지까지 빠지는
통에 체력소모가 예상외다.
그러나 계방산 전 봉우리인 1548봉을 지나면서 나타나는 붉은 빛을
발하는 아주 건강해 보이는 주목들의 모습이 또한 피로를 덜어준다.
특히 한그루는 진행방향에서 볼 때 전혀 상처나 죽은 부분이 없이
붉은 표피가 보여주는 건강미에 태균님과 감탄을 하며 뒷부분을
돌아보니 절반 이상이 패여 나간 상태였다. 이 정도면 대부분
주목을 보호하기 위해 시멘트 같은 물질로 채워 놓으련만 자연상태
그대로 어찌 그리 건강해 보일 수가 있는지 다시 한번 감탄.
1548봉을 지나면서부터는 눈을 피할 곳도 마땅치 않았지만 피하고
싶지도 않아 눈 위를 걸어보니 다져지고 찬 기온에 약간은 얼은
탓인지 잘 빠지질 않아 걸음이 한결 수월하다.
계방산 정상에는 작은 케언과 삼각점 그리고 헬기장의 모습이
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어지간히 시달린 모습이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북동쪽으로의 오대산 줄기와 백두대간의 흐름,
남서쪽으로 운두령 건너 우리가 밟아야 할 기맥의 흐름이 아직은
많은 눈을 등에 인채 힘차게 뻗어나가고 있다.
1:5만 지도를 펴놓고 해양님과 보래령과 회령봉을 짚어본다.
시간상 오늘 예정 목적지인 보래령까지는 어림도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후미와의 시간차이도 상당한 것 같다.
남쪽으로는 영동고속도로 건너 야생화의 천국이라는 백적산에서
가리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흐름이 가물거린다.
후미를 기다리지 않고 운두령까지 가기로 하고 먼저 하산길에 든다.
치성님과 인식님이 먼저 출발하고 잠시 띄어 해양님 태균님과 나
그리고 민영님이 맨 나중에 출발.
소계방산과의 사이 안부를 지나며 잔설의 괴롭힘에서 벗어난다.
그런데 소계방산에 다다르기 전부터 민영님이 운두령에 산불감시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며 해양님을 부르는데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 대답이 없다.
맨 앞에 간 치성님과 인식님이 제일 걱정이 된다.
그 잰 걸음에 내리막길이니 눈 껌뻑할 새 운두령에 내려설텐데 하는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소계방산을 지나 내려설 무렵 뒤 따르던 민영님이 운두령에서
기다리는 종철님으로부터 운두령에 산불감시원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려고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앞선 일행에게
전달하기를 바란다. 그 때부터 뛰어내려가며 나도 해양님을
불러보지만 역시 조용하기만 하다.
큰소리로 몇번 부르자니 저 밑에 우리의 존재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것 같아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나보다 빠른 걸음의 선두가 하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급히 내려서다 마주친 부부 한쌍에게 운두령의 상황을 물어보니
걱정스럽다는 듯 중간 탈출로를 알려주며 단속이 심하단다.
그들도 산불감시원의 눈을 피해 운두령이 아닌 다른 곳에서
출발했다며 다시 한번 탈출로 정보에 대해 확인을해준다.
가파른 비알을 부지런히 내려서다 보니 된비알이 잠시 숨을 돌리는
쉼터에 앞선 일행이 모두 있었다.
알고보니 해양님과 태균님은 민영님의 소리를 알아듣고 치성님과
인식님을 붙잡기 위해 말도 없이 속력을 내어 선두와 합류하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우리는 후미와 합류하기 위해 한담을 나누며 기다렸다.
이런 저런 얘기로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일행 모두가 모였다.
대장은 사전에 우리의 산행에 도움을 준 홍천영림서의 A와
통화를 하기도 하고 운두령의 종철님과도 통화를 해보지만
사정이여의치가 않단다. 우리를 기필코 단속하고 말겠다고
이를 악물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1인당 30만원씩 14명이라... 벌금이 무려 420만원이다.
그들은 완전히 봉 잡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다시 A와 연락을 하고 사정을 해 본 결과 잘 봐줄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지만 웬지 꺼림찍하다. 무사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을 뿐더러 최소한 머리 조아리고 아쉬운 소리 꽤나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우리는 탈출 하기로 결정한다.
그들과 대면 안하는게 상책이라는 데 모두 찬성이다.
지도를 보고 대충 위치를 파악하고 어느 지점으로 내려설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하고, 종철님에게는 우리가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북쪽 가파른 사면으로의 탈출을
시작했다.
맨 앞에 선 치성님이 어느 정도 내려서다 사면을 트래버스해
작은 지능선에 올라 나와 함께 지도를 보려는데 해양님이
'힘들게 왜 자꾸 그렇게 진행을 해?
지형을 보고 가야 될게 아냐'라며 볼멘 소리다.
치성님의 생각은 가능하면 운두령에서 먼 곳으로 내려서기 위해
사면을 트래버스해 나간 것이다.
결국 앞섰던 치성을 비롯 나, 태균, 내형은 지능을 넘었고
나머지 일행들은 바로 계곡으로 내려서게 되어 이산가족이 되었다.
지능을 하나 넘고도 치성님은 계속 더 트래버스 하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형상 완전히 다른 계곡으로 내려서려면
만만치가 않을 것으로 생각되었고 더구나 일행과 헤어져
행동할 수가 없어 치성님한테 더 이상 트래버스하지 말고
계곡으로 내려서자고 했다.
어느 산에서나 내려설때의 지계곡들은 계곡의 큰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하류에서는 모두 만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같은 이치로 오름에서의 지능선들도 마찬가지이다.
이 간단한 이치가 산행에서는 간혹 큰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내려서다 잠시 쉬며 내형이의 비상식량인듯한 선식을 탄 물을
나눠 마신다.
계곡으로 내려설수록 잡목이 심해질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다행히도 아주 오래된 산판 흔적이 나타나며 발걸음이 많이
편해졌다. 게다가 색이 선명한 리본도 눈에 띈다.
예전에 홀로 산행을 즐기다보면 인적이 드문 곳에서 길을 잃고
헤멘적이 가끔 있다. 그럴때면 현재의 위치 파악과 내려설 곳을
예측하고 숲을 헤치게 된다. 이때 리본을 간간히 매달거나 나무
가지를 꺾어 흔적을 남기곤 했다. 목적은 내려서다 만일의 경우
되돌아 갈 경우 내 위치를 알 수 있는 곳까지 무사히 돌아가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며 그것이 남에게는 크게 혼란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부터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곳에서도 리본을 본 순간 같은 생각에 리본을 걷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곳 토박이들이 그들만의 어떤 루트를 위해
붙여 놓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치성님과 동감이다.
리본은 그 후로도 두어개 정도 더 있었다.
어느 정도 내려서니 계곡 지형이 넓어지며 좌측의 지계곡과
합쳐지는 지점에 다다르는데 우연히도 해양님을 필두로 한 우리
일행과 만난것이다.
잠시동안 이산가족의 설움(?)도 끝이났고 봇짐에 든 간식들을
나누며 휴식을 취한다.
우리가 예측했던 운두동으로 나가는 계곡이 틀림없는 것 같다.
잠시 발걸음을 옮겨 우측으로 계곡물이 흐르는 큰 계곡과
합쳐지는 지점을 지나니 건너편에는 밭이다.
탈출이 거의 끝나가는 것이다. 애들 소리도 들린다.
넓은 마당 한켠에는 큰 평상같은 곳에 한무리의 아찌.아씨들이
둘러 앉아 먹고 즐기다 우리의 출현이 의아하다는 듯
모두들 쳐다본다.
'운두송어횟집' 이던가? 위치를 물어보니 운두동이란다.
바로 저 앞에 운두령 오르는 길이다.
내면을 나가는 버스 시간을 알아보니 10여분 정도 있으면
될 것 같다. 우리 일행은 모두 길가로 나서질 않고
은영이를 혼자 보내 버스를 잡게하고 나머지는 은폐 엄폐를 하는데
봉고차 한대가 들어온다. 주인 양반이다.
이런 저런 사정을 둘러대고 내면까지 부탁을 한다.
봉고 한대에 14명이 낑겨 탓건만 모두들 화색이다.
시각이 오후 3시가 넘도록 점심을 못 먹은 탓에
짜장면이 어떻고 짬뽕이 어떻고..... 주저리들이다.
운두동에 도착해 종철님과 연락을 해보니
속사로 점심을 먹으러 왔는데 그들 차 두대가 따라 왔단다.
잘 봐 줄 사람들이 절대로 아니었던 것이 틀림없다.
우리는 여기서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 홍천으로 나갈테니
홍천에서 만나자고 했다. 만일 홍천까지 따라오면
서울까지 그냥 가라고 했다.
내면의 중국음식점 '만다라'
두루치기에 빽알, 짜곱, 짭뽕
맛도 있고 양도 많다.
주문한 것도 많아 남길 처지인데 시골 인심은
더 먹으라며 짜장면을 한 그릇 더 디민다.
다시 종철님과 연락을 해보니 다시 운두령을 넘어
내면(창촌)삼거리를 지나 홍천으로 향하고 있단다.
서석쯤이란다. 그들은 내면을 지나 잠시 더 따라붙다가
나중에 소환하겠다며 돌아갔단다.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다시 와 줄것을 부탁하며
잠시 차를 세워놓고 기다려 보라고 했다.
혹시 다시 그들이 나타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탈출한 것이 무슨 벼슬이라도 한 모양이다.
저마다 한마디씩 우스개 소리를 하며 희희낙낙이다
심지어는 다시 운두령에 들려 잠시 내려서 춤이라도 한번
추고 가자는 이도 있다.
참말로 올챙이 시절 생각은 모두 온데 간데 없다.
내면을 출발해 홍천을 향하다 민영님이 귀 빠진 턱으로
막걸리 몇통을 실었지만 모두 그득함인지 치우지를 못한다.
용두휴게소에 도착해 봇짐을 정리한다.
다음구간 부터는 좀더 각자가 솔선하고 산행도 가능한
계획대로 하자는 바람직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귀가길은 무척이나 답답하다.
은영이와 경림이가 서울역에 10시 이전에 닿아야 하기에
바로 서울역으로 향해 10시 좀 안되어 도착해서
다음 구간을 기약하며 모두들 헤어진다.
민영님을 비롯 서넛은 남대문에서 한잔 더 하겠다며
다시 차에 오른다.
남대문시장 건너편, 술꾼들이 내릴 때 잠시 넋을 놓고
있는데 민영님이 본체도 안한다고 한마디 한다.
1구간부터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한강기맥종주길이 지금까지
미루어 순탄치 만은 않은 것 같다.
4구간까지의 힘겨움이 성공적인 종주를 위한 모든 액땜을
한 것이라 스스로 위로하며 남은 종주길이 원할히 진행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함께 하신 분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4구간에 참여하신 14분의 가슴속 한자락에 추억으로 남을 만한
산행이었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5구간에서 다시 만납시다.
작성 : 한강기맥 기록(代) 정건순(JBJ0530)
확인 : 한강기맥 종주대장 주양돈(하눌)
1. 산행구간: 1209봉 지난 안부 - 1464봉 - 계방산 - 운두령
2. 소 재 지: 강원도 홍천군 내면,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3. 사용지도: 1/50000 도암(道巖) 봉평(蓬坪), 1/25000 진부(珍富) 노동(路洞)
4. 일 시: 2001.04.07 - 2001.04.08 (1박 2일)
5. 날 씨: 흐린 후 맑음
6. 교 통: 25인승 전세버스
7. 참가인원: 14명
구태균(NADA3) 김경림(greyeyes) 김경애(기쁘미)
서민영(메사랑) 오경춘(okchoon) 오인식(심리전)
이은영(그리고리) 인치성(inhjin) 정건순(JBJ0530)
정구현(백두주막) 정해양(gogo21) 주양돈(하눌)
한내형(인터넷)
8. 산행일정
2001.04.07 17:10 양재동 서초구청앞 출발
20:40 방아다리약수 산장 도착 및 휴식
2001.04.08 05:10 기상 및 아침식사
07:15 동역골로 어프로치 시작(산행 시작)
07:30 넒은 길 흔적 끝(곧이어 합수점)
07:50 두번째 합수점(1462봉쪽으로 오르는 길 갈림 삼거리)
08:30 작은 지능으로 붙음
08:40 주능선 도착(1208과 1209봉 사이 안부)-09:00 출발
09:20 국립공원 표지석(북쪽을 알리는 화살표가 뚜렷)
10:00 1462봉
11:00 1548봉(계방산 전 봉우리)
11:35 계방산 정상 - 11:45 출발
12:00 소계방산
12:20 공터 - 선두 만남
13:30 탈출 시작
15:00 운두동 도착(운두송어횟집)
15:30 창촌(내면) 중국음식점 도착, 식사 및 휴식
17:00 서울로 출발
18:20 용두휴게소 도착(봇짐정리)
21:50 서울역 도착 및 해산
9. 후기
등산학교 9기의 시작으로 평소보다 적은 인원이
5시를 조금 넘긴 시각에 오붓한 분위기로 출발한다.
궁내동 톨게이트의 상하행 게이트를 조절한 탓에
많이 밀리는 듯 하던 고속도로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버스 전용차선을 달리는 우리 앞에 옵티마 승용차 한대가
무슨 배짱인지 낑겨 있다.
돈 좀 벌어보자는 데 우리 모두 뜻을 모아
종철님이 앞차에 바짝 붙고 태균님이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런데 앞차에서 눈치를 챈 모양이다.
전용차선을 빠져 나가더니 잠시 후 우리를 바라보며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차선을 왔다갔다하며
우리에게 화풀이를 하는 듯 하다
똥 싼 x이 큰소리 친다더니 꼭 그 꼴이다.
막걸리의 순배는 돌고 돌지만
해양님이 술을 마다한다.
나도 많이 하는 술은 아니지만 자제한다.
문막휴게소를 들리는 게 일반적이지만
오늘은 여주휴게소에 들려 출발전부터 들이부은 것에 대한
일차적인 정리를 했지만 치성님의 바이오리듬(?) 탓으로 중간에
간이휴게소를 만들어 보기도 한다.
어둠이 깔리는 고속도로를 버스는 섬찍하도록 질주를 한다.
속사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나 간혹 나그네의 발길을 끄는
음식점들의 불빛을 제외하면 어둡기만 한 길을 따르며
방아다리약수 가는 길을 놓치지 않으려 눈에 불을 켰지만
결국에는 지나쳤다 되돌아 나와 제길을 찾아든다.
약수를 가기 위해 넘는 길은 제법 해발을 높이는(약980m)
고개다. 포장길이지만 겨울에는 체인을 착용했다해도 승용차로는
간단치 않을 정도의 경사를 이루고 있다.
길가에는 아직도 허옇게 잔설들이 쌓여있고 도로에는 겨우내
뿌린 모래가 도로를 덥고 있을 정도로 많이 남아있다.
대장이 야영하기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자고 했지만 그럴듯한
곳을 발견하지 못하고 고개를 넘어서 잠시 내려서니 왼쪽으로
방아다리약수 산장입구이자 국립공원 매표소다.
대장의 survey 결과 분위기가 짱이라며 약수산장에서의 민박을
제안한다. 잠시 이러니저러니 하다가 민박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고 전나무 잇깔나무가 도열한 산장가는 길을 따라 들어선다.
보름인지 구름 한점없는 하늘에는 동그란 달이 휘엉청하고
투숙객들이 없는지 조용하기만 하다.
'ㄷ'자로 지어진 산장의 방은 툇마루 밑에 군불을 때도록
아궁이가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영낙없는 시골 사랑방이다.
산장지기는 우리에게 약수는 조기, 물은 요기서 해결하고
화장실은 어디메고, 불을 지펴 방을 데피는데 2시간 정도
지나야 따듯하겠으며, 불은 자기가 조절하겠다는 (새벽녘에는
너무 뜨거우니) 등 안내를 해준다.
배낭을 ?E마루에 주-욱 부려놓고 마당으로 내려서기 전
중뜰에 주방을 차린다.
인식님 가져 온 별식인 사철탕과 태균님의 김치찌게 그리고
밥, 물만두 등이 일렬로 늘어선 버너위에서 김을 뿜는다.
4월 7일, 민영님 귀 빠진 날이란다.
그런데 케익이 좀 별나다. 일회용 도시락에 담긴 순대에 하얀
촛불을 꽂고 둘러 모여 축가를 부른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촛불이 꺼지고
박수를 치더니 난데없이
'아이고 아이고.....'
웬 곡소리... 도대체 뭐 하자는 건지 원
이것도 퓨전인가 ???
그리고는 샴페인을 흔들어 뿜어낸다.
약수 바로 옆에는 용담(용신각)이
그리고 그 옆 조금 위에 산신각이 있다.
용담은 컴컴하니 꼭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산신각에는 치성을 드리는지 촛불이 밝혀져 있고 인기척도 있다.
뻗어오른 나무들의 끝에 닿은 하늘에는 달빛이 너무도 요염하다.
산장의 밤은 깊어가고 일행들은 하나 둘 방에 들어 둥지를 튼다.
술을 안한 난 바로 왼쪽에 해양님과 함께 일찍
잠을 청하니 몇몇 일행들의 낙주담소가 어렴풋해진다.
앗! 벌써 5시 10분이야
누군가 기상이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리며 늦잠(?)을
즐기는 일행들을 깨운다.
계획상으로는 4시 기상인데 1시간이나 더 자버린 것이다.
아마도 밤새 '난타' 공연을 소리만 감상한 탓일지도...
눈 비비며 아침거리를 준비하는 것은 역시 귀찮은 일이다
저마다 미적거리는 분위기다.
내가 갖고 온 야채샐러드를 꺼내 놓고 먹자니 해양님이 점심때
먹지 그랬냐고 아쉽다는 표정인지 좀 묘한...
그럭 저럭 아침을 때웠지만(즐겨야 하는데) 뒷정리가 더티다
대장이 딱딱거리며 서둘러 정리가 되가지만 코펠 주인공들의
밉지 않은 볼멘 소리가 나직하다.
안개가 제법 짙게 낀 산골길을 따라 버스에 몸을 싣고 산행
들머리인 동역골 입구를 향하는데 어째 느낌이 이상하다.
도상의 거리는 1Km 남짓인데 시간상 한참 지나친 것 같다.
지형을 파악하려니 안개로 여의치가 않다
얼마간의 시간을 소비한 후 다시 뒤돌아 나가며 감을 잡고
계곡 초입에 도착하여 산행은 시작된다.(07:15)
길은 계곡 좌측으로 넒은 농로길 같이 시작되다 잠시 후
물을 우측으로 건너 이어지다 다시 왼쪽으로 건너게 된다.
길가에는 상당히 넓은 밭들이 곳곳에 있고 있다.
누군가 감자밭일거라며 운두령 감자가 유명하단다.
마지막으로 묵밭 같은 곳을 지나며 길은 소로길로 변하고
의도를 알 수없는 잡목치기를 한 탓에 길이 흐릿하고 걷기가
불편하다. 길 흔적이 간혹 끊기기도 한다.
1st 합수점에서 계곡을 우측으로 건너더니 길은
2nd 합수점까지 계곡 우측으로 느긋하게 이어진다.
산행을 시작한지 40여분 지날 즈음 왼쪽 계곡 건너에
심마니터로 보기엔 너무 크게 잘 지어진 비닐 움막을 지나
곧 두번째 합수점을 좌측 아래에 두고 지나려는데 좌측
계곡쪽에서 사람소리가 들린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몇발짝 더 옮기니
일행이 길 바닥에 크게 화살표를 그려 놓은 갈림길이다.
그때사 우리 일행이 예정과 달리 좌측 계곡으로 들었다는 것을
알고 따라서 계곡을 건너 일행과 합류를 하는데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진행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몇마디 의견을 나누다 되돌아 나와 예정대로 길을 잡아 나간다.
계곡은 대체로 순하고 특징이 없다.
수림도 재목감은 없고 잡목 세상이다.
약 20여분 계곡을 따라 오르다보니 좌측으로 돌축대 흔적이
있는 곳을 지난다. 아마도 오래전에 뻘밭(화전)을 일구던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 아닌가 싶다. 잠히 후 우측으로 봉분이
작지만 심하게 헐지는 않은 묘 1기도 지난다.
계곡을 오르면서 박새의 새싹들이 힘차게 솟아오르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은영이가 힘들게 기억을 되살린 만주바람꽃도
곳곳에 다소곳이 예쁘게 피어있어 걷는 마음을 즐겁게 한다.
계곡의 모습이 거의 무뎌지며 좌우로 갈라지는 곳에서 작은
지능으로 붙어 십여분 남짓 된비알에 가쁜 숨을 토해낸다.
북동쪽으로 오대산의 맹주격인 비로봉이 보이는 주능선 안부에는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담소를 나누며 후미를 기다리고 있다.
산행시작 1시간40여분만에 이번 구간이 시작된다.
처음 해발 1200m 대를 이루는 능선상에는 잔설이 별로였지만
해발을 높일수록 잔설의 양이 발걸음을 더티게 한다.
1462봉의 가파른 오름에 들기전에 남쪽으로의 갈림길은 우리가
계곡 오름의 두번째 합수점에서 처음 들어섰던 계곡으로의
하산로일게다.
능선상의 적설량으로 인해 등산로를 밟지 못하고 좌우로 잡목숲을
헤치자니 진행에 어려움이 가중된다.
차돌이도 눈을 밟기가 싫은지 사람들 보다 더 잘 피해 오르다가
곤란한 지경에 처하면 주춤주춤 낑낑대며 앞서가는 주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1462봉 전 봉우리에 힘겹게 올라서 선두인 갑장,민영,치성,태균,
인식님과 합류하고 휴식을 취한다.
서쪽으로 밟아야 할 봉우리 서너개와 겨울 산행지로 잘 알려진
계방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상에도 길흔적과 두세개의 표지기가 보인다.
그 능선 우측으로 깊게 패어내린 계곡에는 이데올로기 싸움의 착잡한
시대가 만들어 낸 작은 영웅 '이승복'을 기리는 기념관과 청소년
야영장, 그리고 좀더 계곡 아래엔 그의 생가가 자리하고 있다.
후미를 기다리다 점심식사를 하기로 예정된 운두령까지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생각에 의견일치를 보고 출발한다.
사실 경방기간이라 모든 취사도구를 차에 두고 산행에 들었다.
1494봉 부근에는 건강한 자작나무군락과 누군가 몇백년전에 석부작을
해 놓은 듯한 바위 위에 걸터 앉은 고목들이 눈길을 끈다.
계방산이 가까워질수록 두터운 잔설량은 우리를 더 괴롭힌다.
잡목숲을 헤치다 눈 위로 나설라치면 종종 허벅지까지 빠지는
통에 체력소모가 예상외다.
그러나 계방산 전 봉우리인 1548봉을 지나면서 나타나는 붉은 빛을
발하는 아주 건강해 보이는 주목들의 모습이 또한 피로를 덜어준다.
특히 한그루는 진행방향에서 볼 때 전혀 상처나 죽은 부분이 없이
붉은 표피가 보여주는 건강미에 태균님과 감탄을 하며 뒷부분을
돌아보니 절반 이상이 패여 나간 상태였다. 이 정도면 대부분
주목을 보호하기 위해 시멘트 같은 물질로 채워 놓으련만 자연상태
그대로 어찌 그리 건강해 보일 수가 있는지 다시 한번 감탄.
1548봉을 지나면서부터는 눈을 피할 곳도 마땅치 않았지만 피하고
싶지도 않아 눈 위를 걸어보니 다져지고 찬 기온에 약간은 얼은
탓인지 잘 빠지질 않아 걸음이 한결 수월하다.
계방산 정상에는 작은 케언과 삼각점 그리고 헬기장의 모습이
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어지간히 시달린 모습이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북동쪽으로의 오대산 줄기와 백두대간의 흐름,
남서쪽으로 운두령 건너 우리가 밟아야 할 기맥의 흐름이 아직은
많은 눈을 등에 인채 힘차게 뻗어나가고 있다.
1:5만 지도를 펴놓고 해양님과 보래령과 회령봉을 짚어본다.
시간상 오늘 예정 목적지인 보래령까지는 어림도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후미와의 시간차이도 상당한 것 같다.
남쪽으로는 영동고속도로 건너 야생화의 천국이라는 백적산에서
가리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흐름이 가물거린다.
후미를 기다리지 않고 운두령까지 가기로 하고 먼저 하산길에 든다.
치성님과 인식님이 먼저 출발하고 잠시 띄어 해양님 태균님과 나
그리고 민영님이 맨 나중에 출발.
소계방산과의 사이 안부를 지나며 잔설의 괴롭힘에서 벗어난다.
그런데 소계방산에 다다르기 전부터 민영님이 운두령에 산불감시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며 해양님을 부르는데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 대답이 없다.
맨 앞에 간 치성님과 인식님이 제일 걱정이 된다.
그 잰 걸음에 내리막길이니 눈 껌뻑할 새 운두령에 내려설텐데 하는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소계방산을 지나 내려설 무렵 뒤 따르던 민영님이 운두령에서
기다리는 종철님으로부터 운두령에 산불감시원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려고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앞선 일행에게
전달하기를 바란다. 그 때부터 뛰어내려가며 나도 해양님을
불러보지만 역시 조용하기만 하다.
큰소리로 몇번 부르자니 저 밑에 우리의 존재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것 같아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나보다 빠른 걸음의 선두가 하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급히 내려서다 마주친 부부 한쌍에게 운두령의 상황을 물어보니
걱정스럽다는 듯 중간 탈출로를 알려주며 단속이 심하단다.
그들도 산불감시원의 눈을 피해 운두령이 아닌 다른 곳에서
출발했다며 다시 한번 탈출로 정보에 대해 확인을해준다.
가파른 비알을 부지런히 내려서다 보니 된비알이 잠시 숨을 돌리는
쉼터에 앞선 일행이 모두 있었다.
알고보니 해양님과 태균님은 민영님의 소리를 알아듣고 치성님과
인식님을 붙잡기 위해 말도 없이 속력을 내어 선두와 합류하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우리는 후미와 합류하기 위해 한담을 나누며 기다렸다.
이런 저런 얘기로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일행 모두가 모였다.
대장은 사전에 우리의 산행에 도움을 준 홍천영림서의 A와
통화를 하기도 하고 운두령의 종철님과도 통화를 해보지만
사정이여의치가 않단다. 우리를 기필코 단속하고 말겠다고
이를 악물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1인당 30만원씩 14명이라... 벌금이 무려 420만원이다.
그들은 완전히 봉 잡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다시 A와 연락을 하고 사정을 해 본 결과 잘 봐줄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지만 웬지 꺼림찍하다. 무사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을 뿐더러 최소한 머리 조아리고 아쉬운 소리 꽤나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우리는 탈출 하기로 결정한다.
그들과 대면 안하는게 상책이라는 데 모두 찬성이다.
지도를 보고 대충 위치를 파악하고 어느 지점으로 내려설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하고, 종철님에게는 우리가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북쪽 가파른 사면으로의 탈출을
시작했다.
맨 앞에 선 치성님이 어느 정도 내려서다 사면을 트래버스해
작은 지능선에 올라 나와 함께 지도를 보려는데 해양님이
'힘들게 왜 자꾸 그렇게 진행을 해?
지형을 보고 가야 될게 아냐'라며 볼멘 소리다.
치성님의 생각은 가능하면 운두령에서 먼 곳으로 내려서기 위해
사면을 트래버스해 나간 것이다.
결국 앞섰던 치성을 비롯 나, 태균, 내형은 지능을 넘었고
나머지 일행들은 바로 계곡으로 내려서게 되어 이산가족이 되었다.
지능을 하나 넘고도 치성님은 계속 더 트래버스 하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형상 완전히 다른 계곡으로 내려서려면
만만치가 않을 것으로 생각되었고 더구나 일행과 헤어져
행동할 수가 없어 치성님한테 더 이상 트래버스하지 말고
계곡으로 내려서자고 했다.
어느 산에서나 내려설때의 지계곡들은 계곡의 큰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하류에서는 모두 만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같은 이치로 오름에서의 지능선들도 마찬가지이다.
이 간단한 이치가 산행에서는 간혹 큰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내려서다 잠시 쉬며 내형이의 비상식량인듯한 선식을 탄 물을
나눠 마신다.
계곡으로 내려설수록 잡목이 심해질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다행히도 아주 오래된 산판 흔적이 나타나며 발걸음이 많이
편해졌다. 게다가 색이 선명한 리본도 눈에 띈다.
예전에 홀로 산행을 즐기다보면 인적이 드문 곳에서 길을 잃고
헤멘적이 가끔 있다. 그럴때면 현재의 위치 파악과 내려설 곳을
예측하고 숲을 헤치게 된다. 이때 리본을 간간히 매달거나 나무
가지를 꺾어 흔적을 남기곤 했다. 목적은 내려서다 만일의 경우
되돌아 갈 경우 내 위치를 알 수 있는 곳까지 무사히 돌아가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며 그것이 남에게는 크게 혼란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부터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곳에서도 리본을 본 순간 같은 생각에 리본을 걷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곳 토박이들이 그들만의 어떤 루트를 위해
붙여 놓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치성님과 동감이다.
리본은 그 후로도 두어개 정도 더 있었다.
어느 정도 내려서니 계곡 지형이 넓어지며 좌측의 지계곡과
합쳐지는 지점에 다다르는데 우연히도 해양님을 필두로 한 우리
일행과 만난것이다.
잠시동안 이산가족의 설움(?)도 끝이났고 봇짐에 든 간식들을
나누며 휴식을 취한다.
우리가 예측했던 운두동으로 나가는 계곡이 틀림없는 것 같다.
잠시 발걸음을 옮겨 우측으로 계곡물이 흐르는 큰 계곡과
합쳐지는 지점을 지나니 건너편에는 밭이다.
탈출이 거의 끝나가는 것이다. 애들 소리도 들린다.
넓은 마당 한켠에는 큰 평상같은 곳에 한무리의 아찌.아씨들이
둘러 앉아 먹고 즐기다 우리의 출현이 의아하다는 듯
모두들 쳐다본다.
'운두송어횟집' 이던가? 위치를 물어보니 운두동이란다.
바로 저 앞에 운두령 오르는 길이다.
내면을 나가는 버스 시간을 알아보니 10여분 정도 있으면
될 것 같다. 우리 일행은 모두 길가로 나서질 않고
은영이를 혼자 보내 버스를 잡게하고 나머지는 은폐 엄폐를 하는데
봉고차 한대가 들어온다. 주인 양반이다.
이런 저런 사정을 둘러대고 내면까지 부탁을 한다.
봉고 한대에 14명이 낑겨 탓건만 모두들 화색이다.
시각이 오후 3시가 넘도록 점심을 못 먹은 탓에
짜장면이 어떻고 짬뽕이 어떻고..... 주저리들이다.
운두동에 도착해 종철님과 연락을 해보니
속사로 점심을 먹으러 왔는데 그들 차 두대가 따라 왔단다.
잘 봐 줄 사람들이 절대로 아니었던 것이 틀림없다.
우리는 여기서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 홍천으로 나갈테니
홍천에서 만나자고 했다. 만일 홍천까지 따라오면
서울까지 그냥 가라고 했다.
내면의 중국음식점 '만다라'
두루치기에 빽알, 짜곱, 짭뽕
맛도 있고 양도 많다.
주문한 것도 많아 남길 처지인데 시골 인심은
더 먹으라며 짜장면을 한 그릇 더 디민다.
다시 종철님과 연락을 해보니 다시 운두령을 넘어
내면(창촌)삼거리를 지나 홍천으로 향하고 있단다.
서석쯤이란다. 그들은 내면을 지나 잠시 더 따라붙다가
나중에 소환하겠다며 돌아갔단다.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다시 와 줄것을 부탁하며
잠시 차를 세워놓고 기다려 보라고 했다.
혹시 다시 그들이 나타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탈출한 것이 무슨 벼슬이라도 한 모양이다.
저마다 한마디씩 우스개 소리를 하며 희희낙낙이다
심지어는 다시 운두령에 들려 잠시 내려서 춤이라도 한번
추고 가자는 이도 있다.
참말로 올챙이 시절 생각은 모두 온데 간데 없다.
내면을 출발해 홍천을 향하다 민영님이 귀 빠진 턱으로
막걸리 몇통을 실었지만 모두 그득함인지 치우지를 못한다.
용두휴게소에 도착해 봇짐을 정리한다.
다음구간 부터는 좀더 각자가 솔선하고 산행도 가능한
계획대로 하자는 바람직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귀가길은 무척이나 답답하다.
은영이와 경림이가 서울역에 10시 이전에 닿아야 하기에
바로 서울역으로 향해 10시 좀 안되어 도착해서
다음 구간을 기약하며 모두들 헤어진다.
민영님을 비롯 서넛은 남대문에서 한잔 더 하겠다며
다시 차에 오른다.
남대문시장 건너편, 술꾼들이 내릴 때 잠시 넋을 놓고
있는데 민영님이 본체도 안한다고 한마디 한다.
1구간부터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한강기맥종주길이 지금까지
미루어 순탄치 만은 않은 것 같다.
4구간까지의 힘겨움이 성공적인 종주를 위한 모든 액땜을
한 것이라 스스로 위로하며 남은 종주길이 원할히 진행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함께 하신 분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4구간에 참여하신 14분의 가슴속 한자락에 추억으로 남을 만한
산행이었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5구간에서 다시 만납시다.
작성 : 한강기맥 기록(代) 정건순(JBJ0530)
확인 : 한강기맥 종주대장 주양돈(하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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